'월드뮤직-세계로의 창'심영보 지음·해토...이종민 전북대교수
모든 전통(민속)음악은 민족 정체성의 문화적 표현으로 각기 독특한 음의 체계를 가지고 있다. 몇 소절만 들어보아도 그것이 어느 문화권의 음악인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고유의 민속음악에 쉽게 귀가 열리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를 즐길 수 있기 위해서는 일정정도의 듣기훈련이 필요하다. 아니면 세계 공통적 음악 코드에 의한 윤색이 요구된다.
월드음악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한 ‘세계화된 민속음악’이다. 기존 음악의 진부함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의 하나로 시도된 이것은 서구 대중음악의 어법을 도입하여 현대적인 감각으로 ‘보편화’한 민속음악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화’가 그러하듯 월드뮤직이라는 말도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그늘을 동시에 내포한다. 국가나 민족 고유의 특성이 희석되는 희생이 결국 그 고유성 내지는 그 ‘타자성’을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월드뮤직의 진정한 가치가 이러한 ‘타자의 이해’ 즉, 각 민족 고유의 문화와 ‘삶의 양식’의 이해를 돕는 데에 있다는 지적도 이러한 측면에서 가능하다. 세계 음반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서구 음악계가 새로운 마케팅 전략의 하나로 만들어낸 말이지만 이를 통해 지구촌 구석구석의 다양하고 독특한 ‘음의 문화’와 접할 수 있게 된 것 역시 부인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심영보의 「월드뮤직-세계로의 창」. 이 묵직한 월드뮤직 안내서는 바로 ‘세계문화를 이해하는 흥미로운 항해’의 듬직한 길라잡이로 기획되었다. ‘항구는 노래를 만든다’ ‘흑과 백이 빚어낸 무지개 빛 음악’ ‘좌절 속에서 건져 올린 희망’ 등, 비교감상을 위해 동원된 12개 ‘열쇠 말’들의 함의가 우선 예사롭지 않다. 이들은 각각 그리스의 렘베티카, 포르투갈의 파두, 아르헨티나의 탱고를 아우르거나 혼혈잡종문화가 빚어낸 쿠바와 브라질 음악을 함께 형용하기 위해, 혹은 남미의 다양한 ‘누에바 깐시온’을 포괄하기 위해, 다듬어진 표현으로, 이 부분에서 이미 다채로운 ‘현대화된 민속음악’은 물론 그 탄생배경이 되는 고유한 ‘삶의 양식’에 대한 저자의 심오한 이해의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지식정보를 담은 책이 주는 딱딱함을 음악의 탄생, 변천 과정 및 그 역사적·문화적·사회적 배경에 대한 정성 어린 설명과 서정적 필체를 통해 누그러뜨리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대표적인 음악가와 음반에 대한 꼼꼼한 소개는 어지간한 음악 애호가조차 질리게 만들 정도이다. 자칫 월드뮤직을 향한 항해 준비를 하고 있거나 이제 막 시작한 초보자들의 기를 꺾어버릴 수도 있겠다 싶다.
책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저자 심영보의 내공은 오랫동안 다수의 교양프로그램을 제작한 방송음악전문피디로서의 경력에 힘입은 것일 터. 남다른 기획력과 음악에 대한 열정은 박수를 받을만하다.
음악이 영혼을 적셔주고 민속음악이 민족혼를 비춰주는 창이라면 우리는 이 책을 통해 그 거울같이 맑고 깊은 샘물에 닿을 수 있다. 세계화를 위해 힘쓰고 있는 우리 전통음악계에도 신선한 자극제요, 듬직한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서구 문화에 경도되어 우리 음악마저 도외시하는 사람들에게도 분명 새로운 눈뜸의 기회를 제공해줄 것이다.
단순한 음악 안내서뿐만 아니라 참된 세계화를 위한 길잡이 ‘문화서’(文化書)로 서가 한 가운데 꽂아두고 싶은 책이다. 소리축제를 고민하고 있는 분들에게도 꼭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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