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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건축을 쉽고 재미있게 쓴 답사기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이용재 지음...멘토

“딸아, 요새 성적이 어떤가요?” “35등 했어, 아빠.”

 

“뭐라고나! 한 학급이 몇 명인데요?” “36명.”

 

더 놀라운 건 딸이 전혀 창피해하지 않는다는 것.

 

“아빠, 난 의상 디자이너 할 건데 등수가 뭐가 중요해요.” 당당하다.

 

그래 좋다. 그럼 난 ‘인문학적인 딸’이나 만들어야겠다.

 

 

‘인문학적인 딸’이란 도대체 어떤 딸인가. “인문학 교육은 아빠의 몫”이라 외치는 택시기사. 지금도 일요일이면 처자식과 함께 문화재 답사에 나서는 이용재씨가 쓴 「딸과 함께 떠나는 건축여행」(멘토).

 

문학도를 꿈꿨지만 군인아버지의 반대로 공돌이가 된 건축평론가에게 문화재 답사는 험난한 세상 딸에게 착하게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기 위한 ‘인문학적 교육’이다.

 

한 때 건축전문출판사를 설립, 내는 책마다 적자를 봤다. 현장으로 나갔지만 IMF로 전 재산을 날리고 감옥도 다녀왔다. 전업주부가 돼 재기를 모색, 건축현장에 감리로 취직했지만 부실공사에 대한 온갖 유혹에 맞서다 결국 ‘짤렸다’. 2002년 부터 시작하게 된 택시기사. 택시운행 중 스케줄을 짜두었다가 일요일이면 가족과 건축 답사를 가는 게 유일한 즐거움이 됐다.

 

그래서 이 책은 장르가 묘하다. 건축평론서이면서도 인문학 교육서이며, 동시에 여행기이기도 하다. 건축을 키워드로 역사와 미술, 문학, 정치, 사회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글쓰기. ‘막’ 쓴 것 같지만 쉽고 솔직한 데다 화끈하기까지 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무엇보다 건축계 안에서만 유통되고 있는 난해하고 현학적인 글쓰기가 아니어서 좋다.

 

책은 1장 ‘건축, 근현대사를 몸에 새기다’, 2장 ‘시대인물, 건축으로 남다’, 3장 ‘건축, 아트와 실용주의의 유쾌한 만남’, 4장 ‘건축 공간, 교양과 휴식의 장이 되다’로 구분돼 있다. 피비린내 나는 처형장을 죽은 넋들의 안식처로 승화시킨 ‘절두산순교성지’, 비운의 국모를 기리는 ‘명성황후 생가’, 길은 길이되 길이 아닌 건축물 ‘쌈지길’, 독특한 퓨전 한옥 ‘다물마루’, 구 대법원이 미술관으로 탈바꿈한 ‘서울시립미술관’ 등이 소개돼 있다.

 

굳이 전북과 관련된 곳을 찾는다면 ‘미당 고택’. 고창 출신인 미당 서정주 시인이 살았던 서울 남현동 일대 예술인 마을이다. 미당이 살던 집은 대지 100평. 고창에 미당시문학관을 설계한 인연이 있는 김원이 미당 고택 살리기에 나섰다. 서울시 최초로 문인의 집을 문화공간으로 꾸민 사업이다.

 

이 책이 재밌는 것은 건축물 사진과 스케치, 배치도 및 평면도, 단면도, 지도 등은 물론, 사람 하나 정보 하나도 꼼꼼하게 챙겼기 때문이다. ‘미당 고택’을 소개하는 동안 등장한 서정주, 황순원, 이어령 등에 대한 소개, 리노베이션 등과 같은 건축용어에 대한 설명, 역대 ‘미당문학상’ 수상작까지, 관련 정보를 총정리, 교양서로서의 가치를 더하고 있다.

 

길 위에 선 건축가. 그의 건축여행이 재밌는 건 그 옆에 서 있는 딸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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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휘정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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