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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거짓말이 삶의 위안이 되는 세상

달의 바다...정한아 소설ㆍ문학동네

“꿈꿔왔던 것에 가까이 가본 적 있나요?”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작가는 82년생이다. 스물여섯. 아직은 소설 쓰기가 버거울 나이 같지만, 정한아의 「달의 바다」(문학동네)는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했다.

 

김영하 조경란 박현욱 박민규…. 번뜩이는 재치와 기발한 상상력이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만나 소설 읽는 재미를 줬던 작가들 역시 ‘문학동네작가상’이 발굴해낸 이들. 그래서 정한아의 등장은 우선 반갑다.

 

신문사 입사시험에 번번이 낙방하면서 백수생활을 하고 있는 ‘나’(은미). 빈둥빈둥 놀지만 말고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갈비집 일이라도 거들라는 어른들 구박 속에서 ‘나’는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는 우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15년 전 소식이 끊긴 고모가 다른 식구 몰래 할머니에게 미항공우주국(NASA) 우주비행사가 됐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온다. ‘적금과 등산, 단골손님, 소갈비, 독감 예방주사에 대한 믿음’을 가진 할아버지와 달리 ‘환상과 꿈, 아름다움, 비극, 무지개에 대한 믿음’을 가진 할머니는 ‘나’에게 고모를 만나보도록 한다. 하지만 미국으로 찾아간 고모는 우주비행사가 아닌, NASA의 스낵바와 기념품점 직원이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성격적 대립, 고모의 감춰진 불행, 트랜스젠더 길을 택한 친구의 고민, 그리고 백수인 ‘나’의 절망…. 그러나 소설은 고모의 말처럼, ‘삶에 대한 긍정’을 이야기한다.

 

“세상은 언제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이야. 생각처럼 나쁘지는 않은데 늘 우리의 밑그림을 넘어서니까 당황하고 불신하게 되는 거야.”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진짜 이야기는 긍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언제나 엄마가 말씀해 주셨잖아요?”다.

 

처음에는 진짜 이야기였다가 나중에는 거짓말이 되고 결국은 진실로 귀착되는 아이러니. 진실과 거짓이 교차하는 소설을 놓고, 역시 일종의 거짓말인 소설을 쓴 작가는 고모의 말로 용서를 받는다. “만약에 우리가 원치 않는 인생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거라면, 그런 작은 위안도 누리지 못할 이유는 없잖니.”

 

거짓말이 삶의 위안이 되는 세상. 이 한 문장만으로도 독자들은 82년생도 충분히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걸 새롭게 깨닫게 된다. 작가와 비슷한 또래라면, 손으로는 열심히 책장을 넘기면서도 마음 속으로는 질투와 부러움이 묘하게 얼크러질 지도 모른다.

 

“다시 태어나면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나가고, 에베레스트에 오르고, 브래드 피트와 사귀고 싶다”는 스물여섯 아가씨. “하지만 지금 당장은 한없이 노력해야 할 것이 따로 있다. 아직 쓰이지 않은 나의 소설이 나를 지지해 준다”는 젊은 소설가. 벌써부터 그의 다음 소설을 기대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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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휘정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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