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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길흉화복 정해졌나 - 이종민 전북대 교수

'주역전의' 성백효 역주·전통문화연구회...'물이 가는 길 보여주는 인류 최고의 시집'

‘『주역』은 64편의 완성도 높은 시로 구성되어 있다!’ 시인이 진정 세상의 ‘공인받지 못한 입법자’라면 동양사상의 보고(寶庫)인 『주역』의 저자는 분명 ‘물이 가는 길’(法)을 보여주는 시인이다. 시가 인간 마음의 “가장 숭고한 행위”의 산물이라면 장대한 우주적, 심리적 상상력을 집대성한 이 책은 분명 인류 최고의 시집이다.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의 시에 관한 유명한 얘기는, 시를 이 고전의 제목으로 바꾸어 내용에 전혀 어긋남이 없다. “권력이 인간을 오만하게 할 때 『주역』이 그 한계를 상기시켜 주리라. 권력이 인간 관심사를 좁게 한정시킬 때 『주역』이 인간 존재의 풍요로움과 다양함을 일깨워 주리라. 권력이 타락하면 『주역』이 정화시켜 주리라.”

 

모든 위대한 시처럼 이 신묘한 철학서에는 교조적 주장이 없다. 수많은 가변적 상황에 대한 가정과 그에 따른 ‘때에 적중한’(時中) 처방이 있을 뿐이다. 우리가 처하게 되는 상황을 64괘(卦)로 나누고, 이에 따른 각각의 경우를 다시 6개의 효(爻)를 통해 정리하여 완성도 높게 갈무리하고 있다. 그 분류에 일관성이 있지만 그 범주가 도식적이지는 않다. 그 내용과 틀거리가 다채롭고 풍요롭지만 결코 혼란스럽지 않다. 훌륭한 시가 그러하듯 우리들 상상의 날개 짓을 마음껏 유혹하면서도 일상의 삶과 우리의 태도를 끊임없이 뒤돌아보게 해주는 것이다.

 

『주역』은 애초 ‘점책’이다. 의심스러워 결정하지 못할 때 신에게 묻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길흉화복을 도덕적인 것과 연관시키면서부터는 심각한 결정을 내리거나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마음자세를 가다듬기 위해 길잡이 삼는 경전으로 승화하게 된다. 길흉화복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점괘 자체보다 그 풀이가, 그리고 점치는 이의 마음가짐을 더 중히 여기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바른 질문만이 바른 답을 이끌어낼 수 있다. 우주의 생성변화의 원리에 허심탄회하게 마음을 열어야 그 신묘한 자연의 섭리를 들을 수 있다. 욕심과 아집에 사로잡혀서는 극즉반(極卽反)의 역설과 아이러니로 가득한 이 ‘시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 그 오묘한 함축의 의미를 가늠하지도 못한다. 속좁은 이념의 잣대로는 이 장쾌한 우주적 상상력에 범접할 수 없는 것이다.

 

단순 논리에 따라 맥없는 경쟁만 강조하고 편협한 척도로 상대를 매도하기에 이력이 나있는 현대인들이 꼼꼼하게 새기며 읽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성 만능으로 세상을 험하게 망가뜨리고 있는 요즘 세태를 제대로 반성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책이다. 서(恕)의 정신을 잃어버린 이 ‘죽은 시인의 사회’에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상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위대한 시집들과 더불어 곁에 끼고 살아가야 할 동양고전의 요체인 것이다.

 

문제는 접근이 쉽지 않다는 것. 우리들 삶을 우주적 차원에서 총괄하려다 보니 삶 자체만큼이나 복잡해졌다. 훌륭한 시를 대하듯 반복해서 접하는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그 노력에 상응하는 보답을 반드시 얻을 수 있다는 것. 이 책의 어느 대목이건 지금의 나에 대해 얘기 해주지 않는 곳이 없다. 끊임없이 나를 뒤돌아보게 하는 것이다.

 

한문에 좀 어두운 사람들을 위한 믿을만한 번역서가 있다는 게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 오랫동안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에서 후학 양성에 주력해온 한학자 성백효님이 번역한 책이 주석까지 상세하게 풀어주고 있어 초보자들에게 믿음직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본지 서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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