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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장자의 조삼모사 - 김주환

김주환(치과의사·새 진안포럼 대표)

송나라의 저공(狙公,원숭이 키우는 사람)이 원숭이들에게 도토리를 주면서 “아침에 셋, 저녁에 넷을 주겠다.”고 말하자 원숭이들이 모두 화를 냈다. 저공이 다시 원숭이들에게 “그러면 아침에 넷, 저녁에 셋을 주겠다.”고 말했다. 이에 원숭이들이 모두 기뻐했다는 이야기에서 유래된 고사성어가 조삼모사(朝三暮四)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삼모사란 말을 거짓된 방법으로 남을 속이고 우롱하는 말장난이란 뜻으로 이해하고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장자(莊子)의 제물론(齊物論)에서는 조삼모사를 달리 해석한다.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 명목이나 실질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데도 원숭이들은 화를 내다가 기뻐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원숭이 키우는 사람은 원숭이가 옳다고 한 것을 따랐을 뿐이다. 원숭이 또한 어리석어서 말장난에 속은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옳고 그르다, 좋고 나쁘다는 판단은 도토리를 주는 사람의 판단이 아니라 결국 도토리를 먹는 원숭이의 판단이 우선해야하고 원숭이의 판단을 존중한 사람인 저공이 옳다는 것이 장자의 철학이다. 우리가 타자(예를 들자면 조삼모사의 원숭이와 같은 낯선 상대)를 만났을 때, 우리의 판단에만 근거하게 되면 타자와 대립하고 갈등이 유발된다. 타자와 마주할 때, 옳고 그름에 관한 타자의 판단에 근거하면 우리는 타자와의 대립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타자의 시비 판단에 따르는 것과 자신의 판단을 중지하여 마음을 비워 두어야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국민은 분단체제로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 논란, 병역 비리 등의 문제 뿐 아니라 사회 교육 보건 복지 등에 사용되어 삶의 질을 높여야 할 비용이 국방에 사용되어 국민의 삶을 어렵게 하고 있다. 경제 또한 분단체제로 인해 위기가 오기도 한다. 북한 문제에 대한 정치적인 악용과 오남용 또한 헤아릴 수 없다. 이래저래 우리 사회의 곳곳에 분단으로 인한 폐해가 없는 분야가 없을 지경이다. 이런 불합리한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 분단체제를 극복하고 통일로 한걸음씩 나가야한다. 통일로 향하는 길목에서 북한을 만나지 않을 수 없다. 오랫동안 그저 헤어져있었던 북한이 아니라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고 적대시하던 북한을 마주치게 된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체제에서 전혀 다른 방법으로 살았던 북한을.

 

지난 10월초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다. 많은 긍정적 성과가 있었고 평가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발언이 눈길을 끈다. “…(경제)특구 해서 우리 득본 것 하나도 없다. 개성공단 봐라. 4년 전에 삽 들고 시작했는데, 지금시범단지밖에 없다. 우리 큰 득 본 것 없다. 남에서는 마치 개성이 개방·개혁의 성공 사례로 말하는데, 우리는 수용 못한다. 특구 하는 데 개방·개혁 정치 선전하려면 우리는 못 한다….” 실제로 북한은 지난 7년여 진행되어온 경제협력 사업을 위해 군사적으로는 많은 손실을 감수했고 반대로 남한에서는 군사적, 경제적인 면에서 상당한 이익이 있었다. 정치적인 효과 또한 만만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북한으로서는 당연히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남한의 중요한 정치 세력은 북한에게 늘 퍼주기만 한다고 주장하고, 남북정상이 함께 한 공동선언도 국회의 인준 등의 뒷받침을 받은 적도 없다.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남한을 신뢰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신뢰의 회복이 다른 어떤 무엇보다 중요하고 아직도 신뢰회복의 첫 단추도 제대로 끼우지 못한 상태이다.

 

남북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노무현대통령의 보고는 지극히 실망스러웠다. 김정일 위원장과의 협상에서 많은 것을 북한 측에서 얻어낸 것처럼 자화자찬하며 보고하는 모습은 과연 남북통일의 먼 길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정상회담의 보고는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전해들은 북측의 사정과 입장을 남한의 국민인 우리에게 적절하게 전달하여 서로에 대한 갈등의 폭을 좁히고 이해의 폭을 넓히는 것이 옳고 바람직하다. (오히려 한미 FTA 협정 같은 경제적 통상관계에서 자국민의 이해를 따지며 미국의 부시대통령에게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당당해야 한다.) 남북문제에서는 정치적 의도나 성과를 노리기보다는 장자의조삼모사와 같이 먼저 북한의 입장을 존중하려는 기본적인 자세가 신뢰 회복의 첫걸음이며 통일을 준비하는 올바른 자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김주환(치과의사·새 진안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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