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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광대와 꼭두각시 - 김정수

김정수(전주대교수·극작가)

연희를 팔아서 먹고 사는 사람을 우리는 광대라 불렀다. 노래를 주로 하는 창우, 연기를 주로 하는 우인, 연주를 주로 하는 재인을 포괄하면서 노래, 판소리, 가면극, 인형극, 춤, 곡예 등 흥행물이 될 수 있는 민속예능 거의 전 분야에 걸쳐 쓰인 이 광대라는 단어는 고려 중기 이후 급속히 진행된 연행집단들의 사회적 신분 하락과 함께 조선 거쳐 최근에 이르기까지 '천한 상 것'이란 확실한 사회적 합의조차도 기꺼이 감당한 이름이었다.

 

광대들의 공연 중에는 꼭두각시놀이가 있다. 꼭두각시는 조종자에 의해 조종되는 공연용 인형을 말한다. 흔히 박첨지놀이, 홍동지놀이 등으로 불리어지는 이유는 홍동지, 박첨지 따위의 인형이 주요 등장인물로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두각시는 그냥 인형일 뿐이다. 인형의 말은 뒤의 조종자가 한다. 그래서 우리는 남의 조종대로 움직이는 사람을 비유할 때 흔히 꼭두각시, 또는 괴뢰라고 한다.

 

한자로 '넓을 광'에 '큰 대'를 쓰는 광대는 다분히 상징적인 면모도 강하다. 신라 오기 중 하나인 '대면'과 같이 당초 가면 연행자를 지칭하다가 점차 종합적인 의미의 배우, 혹은 연행자로 그 의미를 확장시켜왔다. 그러다 보니 단순한 예술적 기능을 넘어 세월의 결을 쓸어 담는 승화된 의미망을 갖게 된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실행할 줄 아는 예술가, 당대의 민중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며 삶의 여유와 관조의 멋을 지닌 존재, 아무 것도 지니지 않았기에 자유로운 상상과 판단을 할 수 있는 자유인, 그렇게 진정한 광대는 시대를 뛰어넘어, 한 시대를 견인하기도 하였다.

 

개봉당시 사상 최고의 관객동원을 기록하며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영화 '왕의 남자'는 조선시대 광대들의 삶을 그렸다. '징헌 놈의 이 세상 한판 놀다 가면 그 뿐이다'며 극중 장생은 인생을 질펀한 놀이판으로 받아들인다. '왕을 가지고 노는 거야! 개나 소나 입만 열면 왕 얘긴데, 좀 노는 게 뭐가 대수야?' 라며 거리낌 없이 연산과 그의 애첩 녹수를 신랄히 풍자하는 놀이판을 벌인다. 힘 있는 양반들의 꼭두각시나 노리개가 되는 일을 거부하고, 세상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고 발언하는 진정한 광대의 모습으로 우뚝 서는 장생과 공길의 모습에 많은 관객들은 심정적 지지를 보냈다.

 

현대에도 스스로 '나는 광대다'며 당당히 나선 사람들이 있었다. 80년대 창작판소리 '똥바다'로 답답한 시대의 폐부를 찔렀던 임진택이 그랬고, 연극과 영화를 통해 우리 사는 꼴을 말했던 김명곤이 그랬고, 무대를 집 삼아 살던 추송웅이 그랬다. 또한 배우나 가수가 안 되었다면 어떤 사람이 되었을지 전혀 짐작조차 못하게 하는 안성기나 조용필이 우리 시대의 광대로 살고 있다. 가수 김장훈은 지켜볼수록 천상 광대팔자로 태어났음을 느끼게 한다.

 

새 정부 들어서도 광대출신 장관이 한 명 나왔다. 그가 그 자리에 발탁된 것은 행정의 달인이기 때문이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러기에 그가 과거 광대들의 우두머리였던 대방의 참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했다. 허나 자리에 앉자마자 그가 보여준 일련의 행태는 결코 광대답지 못했다. 숙련되지 못한 조종자에 매달려 안절부절 하고 있는 꼭두각시의 모습이었다. 진정한 광대는 시대를 뛰어넘어 살아 있어야 한다.

 

/김정수(전주대교수·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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