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수(극작가·전주대 교수)
대다수 국민의 간곡한 만류에도 미국 쇠고기 수입이 고시되었다. 정부는 우리의 냄비근성을 기대했을 뿐, 티클 만큼의 재협상 의지도 없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게다가 처음부터 논리적인 협상이 아니었으니 논리적으로 설득할 길도 없다.
촛불집회를 두고도 연예인 충동질, 불순세력 사주, 청소년 괴담 등 전형적인 논점 흐리기로 일관하더니, 수업 중 불러내기, 교장선생님 교내방송, 핸드폰 문자 검열, 집회현장 교사 파견 등으로만 그 불을 진화하려 했다. 하지만 불은 더 커졌다. 청와대로 향하는 시민들과 경찰이 충돌하고, 강제해산에 매일 밤 연행자가 속출하고 있다. 늦었지만 결단이 절실한 때다.
그런데도 며칠 전 TV에 출연한 한 여당 고위 당직자는 그저 촛불집회가 반미로 흐르지 않을까만 오매불망 염려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반정부보다 반미가 더 두려운 듯 보였다. 미국 정부 대신 수 억 원의 광고를 뿌려대다 보니, 반정부 구호와 반미 구호가 혼동될 수도 있겠다. 앞으로 달리던 자동차에 갑자기 후진 기어를 집어넣은 듯한 충격이 이럴까? 잃어버린 십 년 운운하더니 아예 30년을 통째로 복고하려 드는 정부에 새삼 현기증이 난다.
30년 전, 유신말기에도 촛불집회가 있었다. 시국기도회였다. 그 때도 빡빡머리와 단발머리들이 상당수 참여하곤 했는데, 경찰이나 선생님께 붙들려가는 일을 막기 위해 스스로 교복의 명찰을 뜯었다. 시국을 걱정하는 기도 자체가 죄악시(가끔은 좌익시)되는 시절이었다. 언론은 종교인들이 정치에 개입한다 비난했고, 하라는 공부 안하고 나선다고 학생들을 쪼아댔다. 하지만 하라는 짓 안하는 군인, 하라는 민주정치 안하는 정권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국민성공시대를 열겠다는 현 정부의 국민과의 소통방식은 참으로 간결하다. 미국을 못 믿으면 누굴 믿냐고 당당히 나서는 그들에게서 참으로 간결한 그들의 철학을 본다. 하지만 간결하되 집요하다. 그래서 불안하고, 그래서 촛불을 든다. 촛불은 광우병보다 높은 곳에 있다.
화려한 공약, 한반도 대운하도 그렇다. 간단하다. 재고해보고 정말 문제다 싶으면 없던 일로 하면 된다. 자존심 상할 일 하나 없다. 허나 어떤가? 이리 저리 몸통을 뒤집고, 비비 꼬아 변신해보고자 용을 쓰는 형국이다. 도대체 아는지 모르는지, 알고도 모른 체 하는 지, 초지일관 동문서답의 정부…, 전생에 대운하에 빚이라도 진 것일까? 그 빚이 얼마나 되는지 우리 국민들이 돈 모아 갚아주면 안하려나?
고집이 집념일 수 없다. 무모한 용기가 추진력일 수 없다. 뭘 모르는 어린 것들이 촛불 들고 나왔다고 우습게 알 일이 아니라, 뭘 모르는 어린 것들까지 촛불 들고 유모차 타고 나왔다는 사실을 무섭게 받아들여야 한다.
2005년 개봉되었던 '아일랜드'는 거대하고 조직적인 속임 속에서 살고 있는 복제인간을 소재로 한 영화다. 유토피아로 세뇌된 곳이 바로 죽음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세상과 단절되어 사는 그들의 삶은 섬뜩하다 못해 잔혹하다. 혹 우리 정부와 일부 언론은 이 같은 단절이 정말 가능하다고 믿고 있는 것 아닐까? 정말 모든 국민이 바보라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할 수 있을까? 촛불이 거대한 운하되어 흐르면 그 때야 알까?
/김정수(극작가·전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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