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록(남원 서진여고 교사)
최근 두 곳의 명산을 다녀왔다. 한 곳은 산악회 정기모임에 합류한 것이고, 다른 곳은 가까운 지인들끼리 함께한 등산 이였다. 평소 걷기와 등산을 좋아해 큰 부담 없이 산행을 하곤 한다. 그런데 정상을 향하는 두 곳의 산행 방법이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산악회는 목적지를 향해 앞만 보고 걷는 사람들이 많다. 일행과 보조를 맞춰야 하니까 대부분이 빠른 걸음으로 정상을 향한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반면에 다른 산행은 천천히 걸으면서 제비꽃을 보고 "아니 이 녀석이 제철이 지났는데 늦게 핀 걸 보니 지각한 꽃이네!" 하자 한 쪽에서 싸리나무를 가리키며 군대시절 라면 끓여 먹었던 과거를 말하기도 한다. 원래 목적이 있었기에 다른 방법으로 등산을 시도했을 것이지만, 시간이 좀 지나 생각해 보니 여유와 느림으로 하루 동안 자연을 완상한 기회가 더 기억 속에 남는다.
이번 산행에선 30분 단축하여 몇 시간 만에 종주했다는 무용담보다는 지난 번 보이지 않았던 거북바위가 보였고, 7부 능선엔 아직 철쭉이 피어 있어 그 꽃 냄새를 맡고 걸으니 피로가 사라짐을 느꼈다는 정겨운 대화가 더 좋을 것이다
학생들과 같이 몇 번 수학여행을 다녀온 경험이 있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은 여행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이다. 일정표 자체가 쪼개진 시간 단위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 민속마을이나 식물원 같이 볼거리가 많고 학습하기에 큰 효과가 있는 장소도 한 시간 정도 만 허락한다. 그러니 뭘 보고 느꼈는지 자못 궁금하다. 계획 단계부터 교사와 학생들이 충분한 협의가 이뤄진다면 이런 현상은 사라질 것 같다.
박물관에 가 봐도 이런 모습은 자주 볼 수 있다. 부모님과 같이 온 아이는 한 손에 노트를 들고 열심히 적는 모습은 참 대견하기도 하지만, 그 뒷모습을 한참 지켜보면 실망할 때가 많다. 엄마는 대뜸 "야 이건 국보급이야 잘 적어. 다 됐지? 다른 것을 봐야지. 빨리 가자" 하고 아이 손을 잡아당긴다. 그 아이는 과연 무엇을 봤을까? 아마 작품이 아닌 해설만 열심히 적었을 것이다. 아이에게 박물관 견학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사물을 볼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 유물이나 작품 앞에서 다른 사람의 방해 없이 수많은 상상의 날개를 펼 수 있을 것이다. 박물관에서 제공한 판에 박힌 정형적 해설이 아닌, 자신의 가슴과 눈으로 느끼고 보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여유가 참된 가치를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창의적 사고의 유연성을 배양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너무 빠르게 변화하면서 움직이고 있다. 그 속에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가려면 자신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무턱대고 쫓아가다 보면 자기의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자주 뒤도 돌아보고, 옆도 보면서 내 스타일에 맞는 산행을 했을 때 가장 보람된 등산이 되는 것처럼 조급함을 버리고 좀 느슨함 속에서 자신만의 세상을 감상하면서 살아갈 때 조화와 균형이 생길 것이다. 이번 여름은 세상 속도와는 거리가 먼 느림과 여유를 느끼면서 실천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택하여 휴가를 보내자. 그리하여, 지금까지 살아왔던 성급한 사고를 털어버리고 우주를 품을 수 있는 낭만을 가득 담아 왔으면 한다.
▲ 정성록 교사는 전북일보·중앙일보 NIE 연구위원과 전북중등 NIE 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정성록(남원 서진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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