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동희(서남대 교수)
프랑스 아폴리네르의 시로 유명한 미라보 다리는 파리의 관광명소로 밤의 조명이 아름다운 다리이다. 파리의 서쪽 세느강을 가로지르는 이 미라보 다리는 다리만을 관광하는 여행상품이 있을 정도이다. 수년전에 이 미라보 다리를 건넌 적이 있었다. 처음 이 다리를 보았을 때 솔직히 적지 않은 실망감에 빠졌었다. 여러 동화와 소설의 배경이 되었던 곳, 작가 황석영씨가 머물렀던 장소이며 여러 프랑스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품속에 미라보 다리에 대한 느낌과 감상을 담아낸 곳이어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 당시 미라보 다리에서 일말의 감동이라도 느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이 내게 있었던 터라,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 유람선을 타고 저녁노을에 물든 미라보 다리를 또 다시 돌아보았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내게 남아있는 미라보의 추억은 사실 별로 없다. 그때 왜 그렇게 집착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해서 조금은 스스로 민망해 지기도 한다. 물론 미라보 다리가 그 정도로 형편없었던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파리의 일부를 대변할 그윽한 정취를 가진 다리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파리를 관광하면서 왜 유독 그 다리에 대한 감상에 집착하였는지 생각해보면 미라보 다리에는 내 마음을 잡아당기는 얘깃거리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얼마전 우리 주변에도 얘깃거리가 있었다. 소곤거리듯 정겨운 소리가 아닌 고함과 소동이 함께한 새만금 간척사업의 찬반논쟁이었다. 미라보 다리의 이야기와는 다르지만 그 논쟁으로 지역 주민들간의 분열과 상처를 넘어 새만금 사업이 결국 다시 추진되게 되고, 이제는 대다수의 주민들이 그 뜨거운 이야기에서부터 멀어져 있는 느낌이다. 요즈음은 이런 논쟁 없는 조용함에서 평온을 느끼고, 나아가서는 그때의 논쟁을 스스로 잊고자 애쓰는 것처럼 보여지기도 한다. 당시의 반대론자들은 이제 머쓱함을 느끼고 있고, 찬성론자들은 승리의 전리품을 나라에 바치고 저마다의 일로 바쁘다. 이러한 가운데 추진되고 있는 새만금을 바라보면 무언가 가슴에 허전함이 느껴진다.
지역 주민들의 마음을 달구었던 그 때의 찬반논쟁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 싶다. 새만금 논쟁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는가? 긴 논쟁에서 온 시간과 국가예산의 손실인가? 단순히 생각해보면 유형(有形)적 손실이겠지만 사실 크다면 큰 무형(無形)적 산물도 있다. 21세기에 접어들어 대형 국토개발에 대한 저항과 선결과제에 대한 이해의 계기를 주었고, 지역 개발과 환경보전의 대립을 극복하는 모델로서도 중요한 의의가 있으며, 환경문제로 인한 지역주민간의 갈등해소의 사례로도 그러하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그 갈등과 논쟁속에서 우리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 그리고 해외에서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었다. 결국 유형자산은 손실이었지만 무형자산은 일종의 득이었다. 그러나 고요한 시간의 흐름속에 그 무형의 산물이 소리 없이 종적을 감추고 있다. 대내외적 관심의 소멸과 함께 대립극복의 역사와 지혜가 소실되어 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새만금 사업에 이러한 무형의 혼이 깊이 배어져 간척사업의 역사와 이야기로 승화되어져야 한다. 꼭 화려하거나 자랑스럽지 않아도 괜찮을 것이다. 파리에서 필자의 발을 그렇게 오래 묶어놨던 미라보 다리의 이야기들처럼 새만금도 무거운 이야기든 가벼운 이야기든 살아있는 이야기와 함께 해야 한다. 새만금에는 갈등과 극복의 정신이 깃들어져 있어야 하며, 지역개발의 욕구를 억누를 수 없는 현실에서 환경을 희생하면서 얻은 개발사업의 고민과 아픔이 승화된 결과물로 재탄생되어야 한다. 살아있는 이야기가 없는 새만금으로는 바닷가에 화려하게 장식된 두바이의 팜 아일랜드와 같은 조형지를 결코 필적할 수 없다. 바야흐로 새만금에 생명력을 불어넣어야 할 때이다. 이 작업은 투쟁과 갈등, 타협과 용서의 긴 터널을 걸어오면서 새만금에 대한 남다른 연민과 감상이 아직 가슴에 남아 있는 사람들, 바로 지역 주민들의 또 다른 몫이 아닌가 싶다.
/곽동희(서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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