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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메아리] 여자의 일생 - 김은미

김은미(전북대 교수)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말 한마디 못하고 헤아릴 수 없는 설움 혼자 지닌 채 고달픈 인생길에 허덕이면서 참아야 한다기에 눈물로 보냅니다 여자의 일생.

 

어느 40대 중반 주부가 20대 초반 결혼 이후 옥상에 혼자 올라 수 천 번은 불렀다는 이미자의 '여자의 일생'이다. 내 보기에는 남편에게도 존중 받고 시부모님께도 인정받으며 어려움 없이 사는 주부인 것 같은데 나름 어려운 시기도 겪었나 보다. 편안했던 오랜 싱글 생활을 청산하고 결혼과 함께 잃어버린 자유의 억울함에 씩씩대고 있던 나를 위로해주며 들려준 노래이다. 자기도 결혼 전에는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으며 귀하게 자랐지만 결혼 후엔 여자의 일생을 살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것이 곧 여자의 운명이요 숙명이기 때문에...그러나 나는 반기를 들어 외치고 싶다.

 

참을 수 없도록 가슴이 아픈데 말 못하고 있다간 병이나 얻게 되어 결국 나는 나대로 처량해지고 병간호에 병원비에 여러 사람 고생 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은 결혼 2년 차 신세대 주부인 나도 여자의 일생에 흔들릴 때가 있다. 시댁의 대소사는 당연히 챙기면서 친정의 대소사를 챙길 때는 왠지 미안한 그리고 고마운 감정이 교차되는 나. 그런데 문득 깨닫게 되었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시댁은 우선이며 친정은 뒷전이라고 강요하지 않았다는 사실을…아니 한 분이 있긴 하다. 사위가 드리는 용돈이며 선물을 무척 어려워 하시는 우리 엄마...그럴 때마다 친정엄마께 화를 내기는 하지만 나도 모르게 세뇌되지 않았다 싶다, 출가외인이 시댁 외의 곳에 신경 쓰는 것은 미안한 거라고. 아마도 우리 엄마는 외할머니께, 외할머니는 그 전 외할머니께 배우셨겠지? 그렇다면 이건 외가 쪽 할머니들 탓이다.

 

그런데 1920년 여류화가 나혜석씨를 보면 조상 탓만을 하기엔 좀 미안하다. 그 당시 그 분은 변호사 김우영씨의 청혼에 시어머니와 같이 살지 않겠다는 단서를 붙여 결혼했다니 말이다. 대단하신 분이다. 21세기인 요즘에도 힘든 사고와 실천을 하셨기 때문이다. 비록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진 며느리들은 많다 해도 막상 결혼조건으로 주장할 만큼 용감한(?) 이는 아직도 많지 않다. 그러고 보면 엉터리 제도에 갇혀 불행해하는 사람들은 그 제도를 탓할게 아니라 뛰쳐 나오지 못하는 자신의 어리석음과 비겁함을 탓해야겠다.

 

결혼 후 다른 기혼 여성들과 이룬 공감대 중의 하나가 결혼에 대한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남녀가 동등하게 결혼하는 것이 아니고 여자가 일방적으로 시집을 가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이란 여자에게 불리한 제도이며 남자는 무조건 남는 장사이다 라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남편은 친정 챙기는 것에 대해 전혀 불편해 하지 않았으며 시어머님과 장모님을 구분하려 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양쪽을 차별 하며 수위 조절을 했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 물론 시댁 위주로 말이다. 그러고 보면 남편은 결혼을 원한 것이며 시집을 온 것은 고루한 나 자신의 결정일지 모르겠다.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친정식구를 시댁식구들과 동등하게 대접해야 하겠다. 처음 몇 번은 가슴이 두근거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사례가 여러 번 쌓이면 관습이 되고 그렇게 되면 친정 엄마도 사위로부터의 융숭한 대접을 더 이상 어려워하지 않으시겠지? 머지 않은 그날을 위하여 새언니도 올케도 화이팅!!

 

/김은미(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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