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에게 추석선물 보내며 쓴 친정아버지의 마음
추석을 앞뒤로 분주했던 일상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제는 명절이 왠지 격식화 된 통과의례처럼 된 느낌이다. 챙겨야 한다는 느낌 때문인지, 명절이 가지고 있는 본 뜻 보다는 올 추석 명절에는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무엇이고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설문을 의례처럼 조사하고 말하는 것들을 보면 명절이 누구에게는 짐이 되는 모양이다. 이 경우 대부분이 남자와 여자의 역할 구분쯤으로 돌려 버리고 웃는 정도에 그치지만 뒤돌아 생각해 보면 씁쓸한 일이다. 누구에게는 힘들고 누구는 힘들지 않다는 정도로 밖에 명절을 평가하는 것 역시 얄팍한 생각이다.
어쨌든지, 본말이 전도되었다 해도 명절을 맞이해서 정성껏 선물을 주고받는 것은 오래된 우리들의 전통이다. 서로가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에 상호부조의 의미를 갖는 것이기도 하고 선물을 전달하는 것으로 연락하기 어렵던 시절 편안함을 확인하는 자기 위안의 행위이기도 하다. 선물을 보내고 받는 것도 옛 사람들의 정은 돈독하다.
계해년 8월 13일에 이영후(李英厚)가 사돈댁으로 보낸 편지를 보면, 그는 사돈댁의 아이가 왔다간 후 이미 한달여가 지났다면서 중추(仲秋)에 체후는 어떤지 자제들이 잘 받드는지 집안 모두 철따라 잘 조섭하고 있는지 안부를 묻고, 본인은 용렬한 형국을 말하기 어려우나 딸아이가 비호를 받아 잘 있는 것이 다행이라고 하였다. 명절 물품은 법례가 있다고 하는데 제 모양을 모두 갖추지 못했으니 이는 이 해 농형(農形)에 관계되어 그런 것이나 어쨌든 거의 예도를 모르는 무식한 사람같이 되었다고 하였다. 추석은 향리의 명절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추석 이후에 왕림하여서 집안을 빛내주시기 바란다고 하였다.
명절 선물을 받고 사돈에게 보낸 편지에는 감사함과 시집 보낸 딸아이에 대한 걱정, 자신이 보내는 선물에 대한 겸손함 등이 간결하지만 따뜻하게 담겨져 있다. 그래서일까 사돈들과 주고받은 편지에는 숨길 수 없는 딸을 둔 아빠의 마음이 녹아 있다. 성정호는 사돈댁에 보낸 편지에 "추석날이 들이 닥치니 새로운 것을 올리는 정은 피차일반인데 과도하게 선물을 보내주었는데도 보답을 못하니 부끄럽기 그지없다면서" 사위를 보내주기를 희망하고 있다. 추석같은 명절에는 초대를 하거나 사위가 보고 싶다는 문구를 말미에 빼먹지 않는 것도, 어쩌면 딸을 가진 아버지의 애틋함일 것이다.
명함 한 장 꽂아서 보내는 명절의 선물 문화에 비한다면 그 맘을 표현하는 방식이 참 풍요롭다. 새로운 시대는 그 시대에 맞는 문화가 필요한 법이다. 옛 것이 좋다 해서 마냥 옛 것만을 지키자거나 옛 것은 좋고 지금 것은 나쁘다는 식의 구분을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추석 명절을 맞이해서 사라져 가는 '정(情)'을 되찾을 수 있는 조그마한 운동은 없을까 하는 바램이 굳이 나만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홍성덕(전북대박물관 학예연구사)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