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 젊은 타악 국악인 4명 첫 공연뒤 퍼져
꽹과리, 징, 장고, 북 등 네가지 농악기로 연주하도록 편성한 음악을 사물놀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물놀이란 명칭은 원래 서울의 한 소극장에서 창단된 놀이패 이름이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사물(四物)은 불교의식에 사용되던 악기인 법고, 운판, 목어, 범종을 가리키던 말이었다.
사물놀이 역사는 생각보다 짧다. 건축가 김수근이 1977년에 지은 '공간사랑'이란 소극장은 많은 연예인들과 문화예술인들이 즐겨찾는 곳이었다. 사물놀이도 이 곳에서 탄생됐다.
1978년 2월 28일 소극장 '공간사랑'에서 열린 '제1회 공간 전통음악의 밤'. 김용배(쇠) 김덕수(장고) 최태현(북) 이종대(징) 등 젊은 타악 국악인 4명이 '남사당의 후예'를 자처하며 웃다리풍물가락을 공연했다. 두 달 후 영남풍물을 내세운 두번째 연주가 있었는데, 이 공연 후 사람들은 성공적인 공연을 축하하며 이들에게 '사물놀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사물놀이 단체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진 지금, 이들은 다른 단체와 구별하기 위해 창단멤버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김덕수의 이름을 따 '김덕수패 사물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멤버들이 많이 바뀌었지만, 1993년 김덕수와 강민석이 사단법인 사물놀이 한울림을 창단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초창기 사물놀이에 몸 담았던 멤버들은 대부분 유랑집단인 남사당과 함께 어린시절을 보낸 이들이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에 따라 풍물굿도 현대에 맞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마당에서 벌어지던 풍물굿을 음악의 형태로 다듬고 변형시켜 극장의 무대 위로 끌어올리게 됐다.
풍물굿과 사물놀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풍물은 각 지방마다 고유한 특성을 가지지만 사물놀이는 각 지방의 특성을 하나로 모아서 연주한다는 것이다. 사물놀이는 초기에는 각 지방의 풍물굿들을 개별적으로 정리하는 형태였지만 점차 비나리, 삼도 설장구, 삼도농악, 판굿의 4가지 연주곡목으로 간소화됐다.
풍물굿은 마당에서 일어서서 하는 선반이고, 사물놀이는 무대에서 앉아서 하는 앉은반이라는 차이도 있다. 연주시간에 있어서도 차이가 큰데, 풍물굿은 1∼2시간에서 길게는 하루 종일 걸리는 경우도 있지만 사물놀이는 한 곡당 10분에서 20분 사이다.
올해는 사물놀이가 탄생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사물놀이가 우리 가락을 쉽게 접할 수 있게 하고 세계에 한국을 알리는 첨병 역할도 해왔지만, '신명이 거세된 채 서양 장르적 개념으로 음악화'됐다는 비판도 있다. 풍물굿이 개방적인 연주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에 비해 사물놀이는 관객 참여에 상대적으로 제한이 있고 신명을 절제하는 폐쇄적인 연주형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사물놀이가 풍물이 가진 대동놀이적 성격을 소멸시킨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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