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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명문(明文)

매매문서 작성때 표기한 말소정보 '효주배탈'

1834년 류지원이 작성한 매매문서 (desk@jjan.kr)

조선시대 매매문서[明文]을 보면 옛 문서(舊文記)를 함께 넘기니 이후에 말썽이 생기면 이로써 관에 고하여 증거로 삼도록 하라는 문구가 정례화된 규정처럼 들어가곤 한다. 무엇인가를 사고 팔 때, 그 행위를 증명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소위 등기제도가 성립되기 이전에 토지나 집, 노비 등을 사고 팔 때에는 매매계약서인 명문을 작성하고 그 문서를 관에 신고하여 증명[입안]을 받아야 했다. 이러한 원칙이 있었음에도 대부분의 경우 매매 당사자 사이의 거래 행위로 제한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등기시스템이 없던 시대에 모두가 인지할 수 있는 토지를 팔았다는 증거를 남기기는 어려운 일 중에 하나였다.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토지를 팔고 살 때에 매매 당사자가 새로운 매매계약서[新文記]를 작성하고, 그에 첨부하여 토지에 대한 권리의 유래를 증명하는 일체의 옛 문서[구문기]를 함께 양도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매매문서를 잃어 버렸거나 또는 옛 문서에 표기된 물건 중 일부만을 넘길 때 문제가 발생한다.

 

이 경우에 바로 말소사항을 배탈(背?)하도록 하였다. 이를 효주배탈이라 하는데 효주는 지우다 말소하다의 뜻이며, 배탈은 문서의 뒷면을 뜻하는 '배(背)'와 '사고, 사건, 문제, 고장'의 의미인 '탈'이 합한 것으로 '탈을 내다' '사고를 일으키다'는 의미이다. 즉 효주배탈은 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문제를 문서의 뒷면에 기록하여 말소한다는 의미이다.

 

효주배탈은 옛 문서 내에 기록된 물건 중 매매 대상이 되지 않는 건에 대하여 동그라미를 그리거나 가위표를 하고 그 내용을 뒷면에 기록하는 것을 말하지만, 반드시 뒷면에 기재한 것은 아니었다. 옛 문서를 잃어버린 내용을 전면에 기재하거나 옛 문서를 넘겨줄 수 없는 이유를 매매계약서 내에 적어 놓은 것이다.

 

1834년 류지원이 류도원에게 판 문서를 보면 매매 계약서 상에 동그라미를 그려 넣어 표시한 것은 류도원에게 매매하는 토지가 아니므로 표시를 한 뒤 뒷면에 각 토지에 대한 매매사항을 기록해 놓았다. 즉 한 장의 옛 문서에 표시되어 있는 여러 곳의 토지 권리에 대해서 그 일부만을 류도원에게 양도하는 것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다. 이 문서만으로 류도원과의 매매가 성립되는 것은 아니다. 류지원은 류도원과의 류도원에게 팔 땅에 대한 새로운 매매계약서를 작성하고 그 증거자료로 그 권리를 증명할 수 있는 이 옛 문서를 첨부해 넘긴 것이다. 따라서 이 문서 중 류도원에 팔지 않은 토지에 대한 권리는 그 토지를 산 사람들에게 옛 문서의 첨부없이 그 내용만을 적어 매매문서를 작성했을 것이다.

 

토지의 권리 승계가 복잡하면 할수록 토지를 산 사람은 관청에 신고하여 공증을 받는 것이 확실하게 소유권을 보장 받는 방법이었다. 토지매매의 공증을 받은 입안문서가 토지매매문서에 비해 턱없이 적게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조선시대의 토지매매 관행 어떠했을지 그리고 그로 인한 분쟁이 끊이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사람들이 꼭 꼭 보관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소유권을 증명해야 할 각종 경제관련 문서들이었다.

 

/홍성덕(전북대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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