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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차가운 세상 상처입은 이들을 위해

동화작가 박기범의 '미친개'

그림책인데도 불구하고 표지부터 개의 모습이 상당히 침울하다.

 

내용면에서나 분위기면에서 보통 그림책과는 사뭇 다른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 책 「미친개」는 '타인과의 소통과 이해' 문제를 '버려진 개'로 형상화해서 절제된 표현으로 짧은 시간에 긴 여운을 남기는 단편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진다.

 

떠돌이 개 한 마리가 있었다. 개는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다. 먹을 것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저 살기 위해 먹을 것을 찾아 동네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다.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마을과 산을 헤맨다. 추위를 막아 줄 보금자리 따위는 없다. 겨우 얻은 먹이도 경쟁자들로부터 지켜야 하기에 편하게 먹을 수도 없다. 개의 생활은 고달펐다. 그러나 개를 가장 괴롭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개의 추레한 몰골과 먹이를 찾아 떠도는 행색을 보고는 돌팔매질을 하고 작대기를 휘둘렀다. 아이 어른 가릴 것 없이.나중에는 병들고 미친개라는 둥 불길한 개라는 둥 사람을 해치는 개라는 둥 온갖 근거 없는 말까지 만들어 냈다. 해악 끼친 것도 없고 항상 사람을 피해 다녔건만 사람들은 급기야 개를 죽이기로 작정하고 몽둥이에 총까지 집어 들고 개를 쫓아다녔다. 개는 사람에게 생명의 위협을 받는 지경에까지 놓였다.

 

책의 후반부, 개는 자신의 숨을 끊으려는 사냥꾼을 향해 무섭게 덤벼든다. 개에게 깔려 쓰러진 사냥꾼의 몸을 밟고 선 개는 '산을 울리도록 크게 짖는다'. 자신을 괴롭히고 죽이려 했던 모든 사람들에게 울분을 토해 내듯이. 넓은 여백에 생략된 배경, 붓으로 거칠게 휘갈긴 선의 느낌이 주인공 떠돌이 개의 서글픈 내면을 대변하는 듯하다. '어느 것 하나 너그러운 것이라곤 없었던' 세상에서 기어이 살아남은 떠돌이 개. 세상에 버림받고 배척당해 상처 입은 모든 이들이 이 개를 통해 삶을 버텨낼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 개의 추레한 몰골만을 보고 몽둥이를 휘둘렀던 사람들, 정작 개의 그 깊고 서늘한 눈은 보지도 못했고 볼 생각도 하지 않았던 그 사람들이 우리가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는 그림책이다. 평범한 그림책이 아니라 사람사이의 한 단면을 그려낸 무게 있는 그림책으로 고학년어린이와 부모가 함께 읽을만하다.

 

/백수진(전주시립 송천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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