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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임혜지의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

건축가에게서 배우는 지혜…후손들에 소중한 과제 넘겨주는 세대 교체의 믿음

나나 애들이나 아파트를 싫어하여 작은 마당에 감나무 두 그루가 있는 코딱지만한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나는, 애들도 크고 해서 조금 건평이 넓은 곳을 찾다가 포기해버린 기억이 있다. 대부분의 지역을 아파트가 점령하였고, 그나마 후보지로 눈여겨보았던 곳들도 하나하나 음식점에게 잠식되고 있었다. 풍수(風水)를 고려한다든지 하는 것은 아예 사치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절망감에 낡은 실내구조를 리모델링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그 편이 속이 시원하였다.

 

예전에 선비들은 살 집을 짓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과 학문을 완성한다고 하였다. 그 말 때문인지 나는 집을 가능한 주의깊게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나도 지어보려고. 모든 일이 그렇듯이 볼수록 어렵게만 느껴진다. 아마 보는 눈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아직 도가 트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들어서면 휑한 집이 있고, 한숨 자고 싶은 집이 있다. 정말이지 귀신이 나올 듯한 집이 있고, 기도를 하지 않아도 천사가 되지 싶은 집이 있다. 집을 나서며 떠밀리는 느낌을 주는 집도 있고, 엄마가 안고 있다가 내려놓는 듯한 집도 있다. 동선(動線)이 어지러워 화장실을 다녀오면 옆집을 다녀온 듯한 집도 있고, 별로 넓지도 않은 집인데도 우주여행을 하는 듯한 집도 있다.

 

이 책은 내 몸의 연장인 나의 집, 그리고 내 몸과 집의 연장인 도시와 그밖의 공간들에 대한 사색이다. 실은 사색만이 아니라, 저자가 건축가로서 발로 뛰며 먼지를 뒤집어썼기에 가능한 내공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글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건축가라고 하면 공사장 십장같은 투박함이 연상되지, 섬세하고 깊이 있는 안목이나 필력이 있으리라고 기대하지 않았다.(십장님들께는 죄송) 그러나 역시 프로의 세계는 무서운 것이다. 이 분도 도가 튼 분 중에 하나인 듯하다. 전문성에 더하여, 삶에 대한 통찰력과 따스함을 함께 갖추었다는 점에서.

 

예를 들어보자. 칼을 최소한으로 대는 방법을 찾는 독일의 문화재 보존 방식에 대하여, 저자는 "현재의 기술에 대한 겸손과 미래의 기술에 대한 믿음이 자리잡고 있다. 나날이 발전하는 후손들의 능력과 인성을 믿고 소중한 과제를 넘겨줄 수 있는 올바른 세대교체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인간에 대한 근본적인 믿음이라고 하겠다"고 말한다. 200년 된 건물을 철거하기 전에 먼지와 비둘기 똥 속에서 실측조사를 하는 장면은 일과 하나가 된 저자의 삶이 읽힌다.

 

무엇보다 여러분들도 따라해 볼 일이 있다. "이 세상에는 내 것이 아닌데도 내 것처럼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널리고 널렸다. 바깥 공간이 특히 그렇다. 도심의 가로수 밑에 싱싱하게 가꾸어진 한 뼘 잔디밭일지라도 보고 즐거워하는 사람이 바로 임자다"라는 저자의 말에 따라, 난 한국고전문화연구원 앞에 마주보이는 경기전을 확실히 내 앞마당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담장을 나의 심안(心眼)에서 지우고!

 

/오항녕(한국고전문화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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