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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연재를 마치며

기록은 역사이자 인간의 삶을 찾는 궤적

한 장의 문서에서 옛 사람들이 살았던 모습을 찾기란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기록은 누구를 위해서 인위적으로 남긴 것이 아닌 사람들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무엇인가를 확인하고 증거로 삼기 위한 목적이 크기 때문이다. 증거라는 관점에서 보면 삶의 형태를 추적할 수 있지만, 그 삶의 흔적은 사회적 규율에 근거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존하는 대부분의 옛 문서들이 사회경제적 규정에 의해 생산된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들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부여되는 세금과 관련한 호적단자류나 토지매매를 증명하기 위한 명문(明文), 소송관련 문서와 개인의 관직 생활과 관련된 임명장 등이 자연스럽게 후대에 전해진 것은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기록은 흔히 역사라고 한다. 그렇지만 모든 기록이 꼭 진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기록은 인간의 행위 기록이기 때문에 그 행위의 진위에 따라 담긴 내용의 진실성은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진실의 여부는 기록을 남긴 자의 몫이기도 하지만 기록을 남긴 자의 생각과 판단이 사실의 진위에 반드시 연결되는 것만은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역사의 몫이다. 우리들이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았던 옛 문서 쪼가리에 눈길을 주고 그 내용을 알고자 하는 것은 역사의 구슬을 꿰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특히 낱장의 옛 문서들은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정사(正史)에서는 도저히 알아 낼 수 없는 풋풋한 삶의 모습들이 담겨져 있다. 매관매직이나 인신매매와 같은 교과서에서 배웠던 수많은 역사적 실체들의 구체적인 사례를 옛 문서는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고로움을 통해서 역사는 다양해 진다. 후대의 사람들에 의해 역사적 사실의 진실성은 새롭게 밝혀지기도 하고, 다시 한번 확인되기도 한다. 물론 그것은 어떻든지 기록이 남아야 하는 전제를 가지고 있다. 기록이 남지 않았을 경우 진실은 때로 소문에 파 묻히기도 하고, 선량한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기도 한다. 내가 남긴 조그마한 문서 하나가 후대의 역사를 바꿀 수도 있고, 새로운 사실을 이야기해 줄 수도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그래서, 기록 남기기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 주어진 생의 몫이다. 반드시 똑똑하고 출세한 자들만이 기록을 남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나와 내 주변의 일상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내가 살아가는 과정에 받거나 작성하거나 하는 숱한 문자기록들 역시 남겨야 할 대상이다. 기록의 양이 풍부하면 풍부할수록 후대의 역사가들이 해야할 수고로움은 늘어나겠지만,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 데에는 족하지 않다. 역사는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모두가 역사가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사관(史官)이 될 수 있다.

 

그것은 지극히 평범한 일로부터 출발한다. 내가 태어나면서부터 현재까지 나와 관련된 기록들은 무엇이 있을까? 앨범을 뒤지고 주위 사람들을 탐문하고, 장롱 서랍을 찾아보면 새롭게 보일 수 있는 많은 기록들이 존재해 있다. 단편의 기록을 모아 정리하다 보면 나의 역사는 자연스럽게 정리된다. 그렇다고 기록 남기기가 '일'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일은 재미보다 싫증이 앞서기 때문이다. 커다란 상자 하나 정해 놓고 눈에 띄는 대로 모으다가 정년한 뒤 새벽잠 없어질 때 쯤 꺼내어 정리할 생각을 하면 참 편한 일이다. 혹 아는가 그 때쯤 나의 기록에 대한 새로운 신문연재를 할 수 있을지?

 

지난 2년 동안 '옛 문서 향기'를 애독해 주신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그저 누군가 해야 할 일을 대신했다는 정도의 위안을 갖고 싶을 뿐이다.

 

홍성덕(전북대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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