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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격정적 성격·독살된 임금…정조 '그의 진실은?'

어찰집 발견, 과거 평가 새롭게 조명돼

조선 제22대 국왕 정조(왼쪽)와 예조판서와 우의정 등을 지낸 노론 벽파(僻派)의 거두 심환지. (desk@jjan.kr)

조선 제22대 국왕 정조(正祖, 1752∼1800). 최근 정조 말년의 정국 동향을 밝혀줄 수 있는 어찰첩(御札帖)이 새롭게 발굴됐다. 어찰첩에 나타난 '인간 정조'는 알려진 바와 다르게 매우 격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삶을 살아왔을까.

 

▲ 정조어찰, 보물급 문화재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은 지난 9일 정조 어찰 299통 5책 분량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은 이날 "원래 이 어찰들은 6책 분량이었지만 나머지 1책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으며, 국립중앙박물관은 12일 "1책 분량의 정조 어찰을 2003년 매입 형식을 통해 구입했다"고 공식확인했다.

 

이 어찰첩은 정조가 예조판서와 우의정 등을 지낸 노론 벽파(僻派)의 거두 심환지(沈煥之, 1730∼1802)에게 보낸 것. 어찰(御札)은 임금의 편지를 말한다.

 

어찰첩은 1796년 8월 20일부터 1800년 6월 15일까지 작성됐다. 정조가 친필로 심환지에게만 보낸 것으로 조선시대 어찰로는 최대 분량이어서 보물급 문화재로 주목받고 있다. 어찰 분석에 관여한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는 "국왕과 대신 사이에 국정 현안을 놓고 갈등하고 조정하고 첩보를 수집하며 여론 동향을 캐는 다양하고 은밀한 통치행위의 비밀이 담겨 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정조 어찰 공개 기자회견' 지난 9일 서울 성균관대학교에서 김문식 단국대 교수,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 등 관계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새로 발굴한 정조 어찰 299통 중 일부를 공개하고 있다. 이 편지들은 모두 정조가 친필로 써 심환지 한 사람에게 보낸 것으로서 정조 말년 국왕을 정점으로 하는 정국 동향을 파악하는 데 획기적인 가치를 지닌 자료로 평가된다. (desk@jjan.kr)

 

정조는 이 어찰들에 대해 폐기할 것을 명령했지만, 심환지는 어찰을 받은 날짜와 시간, 장소 등을 기록해 두었다.

 

▲ 정조의 인간적 면모 드러나

 

정조 어찰에는 무엇보다 정조의 인간적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정조는 심환지가 더 늙기 전에 그의 큰아들을 과거시험에서 합격시키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1799년 10월 1일, "300등 안에 미치지 못했으니, 이미 그럴 것이라 생각했다. 앞으로 기나긴 세월이 있으니 어느 때인들 합격할 수 없겠는가? 내가 굳이 이번에 하려고 한 것은 경이 심하게 노쇠하기 전에 자식이 과거에 합격하는 경사를 보도록 하고 싶었다"는 내용의 위로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자신을 보필하던 신하의 죽음을 겪은 뒤에는 그 심정을 전하기도 했다. "채제공이 죽었으니 텅 비어 사람이 없다고 하겠다. 근래에는 풍속이 야박하여 남인이 아무런 하는 일이 없는 것을 배꼽 잡는 웃음거리로 삼는다고 한다." (1799년 1월 18일)

 

또한 자신의 건강에 이상이 있음을 여러차례 토로하기도 했다. 정조가 세상을 뜨기 13일 전인 1800년 6월 15일에 보낸 편지에는 "뱃속의 화기가 올라가기만 하고 내려가지는 않는다. 여름 들어서는 더욱 심해져 그동안 차가운 약제를 몇 첩이나 먹었는지 모르겠다"며 "모두 고생스럽다"고 호소했다.

 

때로는 "매번 입을 조심하는 일 한가지만은 탈이 생기는 것을 면하지 못하니, 경은 생각 없는 늙은이라 하겠다"(1797년 4월 10일)며 꾸짖었으며, 때로는 "헤어진 뒤로 어느덧 달이 세번 바뀌고 50일이 지났는데, 그리운 마음에 잊지 못하고 있다"(1797년 10월 7일)고 마음을 담아보내기도 했다. 정조는 꽤나 감상적인 인물이었던 것. '입에 젖비린내 나는 놈' '호로자식(胡種子)' '욕을 한 사발(一鉢辱說)이나 먹게 만들었으니' 등 임금의 격조 있는 문투하고는 거리가 먼 것들도 많다.

 

▲ 정조 독살 의혹 해소되나

 

정조 비밀편지 공개 후 '정조 독살설'이 또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동안 정조와 심환지는 대립관계였으며, 정조가 심환지로 대표되는 수구보수파인 노론 벽파에 의해 독살당했다는 '독살설'이 퍼져 있었다.

 

그러나 이 편지를 보면 심환지는 정조의 꽤 가까운 측근이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각종 현안이 있을 때마다 심환지에게 비밀편지를 보내 상의하고, 또 서로 미리 짜놓고 정책을 추진할 정도였다. 어찰 발굴과 분석을 맡은 측에서도 "적어도 이 어찰들을 보면 독살설은 사실이 아니다"고 말하고 있다.

 

독살설은 '멀쩡하던 정조가 갑자기 죽었다'는 것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어찰에서 정조가 심환지에게 여러 차례 자신의 병을 호소했던 사실이 발견되면서 정조는 독살이 아니라 병사했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또한 이번 어찰 발굴로 「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의 기록이 일부 어찰 내용과 달라 역사학계는 "기록된 역사 이면에 진짜 역사가 있었다"며 혼란스러워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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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휘정 desk@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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