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농탕 한 그릇에 반해 연극 입문하고 무대서 쓰러져 연극인 품에 안겨
"난 말이야 설농탕 한 그릇 얻어먹고 연극쟁이가 된 게야. 참 배고팠던 시절, 연극하는 친구가 있었어. 그 친구는 늘 가난한 날 잘 알고 있었어. "밥을 먹었노라"고 얘기를 해도 그 친구는 "더 먹어둬"라면서 자주 설농탕을 사주곤 했지. 벼룩도 낯짝이 있다는데 그래서 그 친구가 가자고 하는 곳이면 어디던 따라다녔지. 그가 드나드는 곳은 연극 연습장이었지."
어쩌면, 연극 연습이 끝나고 얻어먹는 술 재미가 더 컸는지도 모른다. 연극인 박동화(1911~1978). 문학도였던 그는 설농탕 한 그릇에 반해 연극에 입문했고 신파극이 아닌, 순수한 신극운동에 빠져 희곡 공부를 하게 됐다.
연극을 향한 그의 집념은 외길인생을 살게 했다. 마치 연극을 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사람처럼, 연극 이외의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사는 집이 없어도 잠 잘 곳 대신 연극 연습장 마련이 더 급했으며 끼니보다는 한잔 술을, 수전증은 구술로 보충했다. 연극에 관한한 고집불통이었으며, 연극을 폄하하거나 무시할 경우 어느 누가 됐건 맹공을 퍼부었다. 물론, 연극 연습 과정에서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았다. 연습을 하던 도중 대본을 수정하는 일이 다반사이면서도 배우들은 그 즉시 외워야 했고, 동작선이 뒤틀리면 어김없이 물건들이 날아왔다.
전남 영암에서 태어났지만 20여년 동안 전주에 살며 전북 연극의 주춧돌을 놓은 박동화 선생.
소원대로 연극 무대에서 쓰러져 연극인들의 품 속에 잠든 그를 기억하며, 사단법인 동화기념사업회가 '연극인 박동화 문집' 첫번째 「끝나지 않은 독백」을 펴냈다. 박동화의 삶과 연극 관련 기록들을 정리한 것. 동화기념사업회장 문치상 회장은 "세월이 조금만 더 지나면 그나마 남아있던 선생님에 대한 기억이 전부 사라질 것 같아 초조했다"며 "박동화 문집이라는 이름으로 선생님에 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끝나지 않은 독백」은 '박동화의 연극인생'과 '후배들이 마련한 추모공연'으로 엮어졌다. '박동화의 연극인생'에 모아진 그의 삶은 오롯이 선생이 활동했던 당시 지역의 연극 역사가 되며, '후배들이 마련한 추모공연'은 류경호 전북연극협회장과 이종훈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류영규 박동화동상건립집행위원장 등 후배들이 선생을 그리워하며 쓴 글들이다. 문회장은 "연극을 향한 선생님의 집념은 우리 후배들이 본받아야 할 유산"이라며 "1991년 발간된 박동화 희곡집 「나의 독백은 끝나지 않았다」에 실리지 않은 작품들을 정리해 박동화 문집 제2집을 발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