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5-11-24 22:48 (Mon)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주말 chevron_right 책의 향기
일반기사

[책의 향기] 이병초시인 6년만에 시집 '살구꽃 피고'

전라도 입말로 풀어낸 질박한 고향풍경

'공부는 늙어서 잠 안 올 때나 하는 것이었다.'

 

중학교 3학년 3월말고사 평균 61점. 수업료로 '냅다' 여수행 완행열차를 끊고, 양복 기술을 배우러 불티나 양복점에 갔다. 보름도 안 되어 발각, 찍소리도 못하고 집에 잡혀온 악동.

 

이병초 시인(45·웅지세무대학교수)의 유년 시절 한 토막이다.

 

목젖이 축축하게 젖어드는 시와 웃음이 번지는 시작노트가 덤으로 엊혀진 시집「살구꽃 피고」(도서출판작가)가 출간됐다. 첫 시집 「밤비」 (모아드림)에 이어 6년만에 펴낸 시집이다.

 

황방산 일대 가난한 풍정의 잔물결을 따라 가다 보면, 소리 한 자락 배웠을 것 같은 그의 걸걸한 목소리가 지난한 세월을 넉넉하고 따뜻하게 매만진다. 가난하고 늙고 병든 아버지 무릎의 '꾸덕살'을, 소주 한 모금에 달래시는 애리는 어머니의 어금니를 응시하며, 아프고도 곡진한 부모의 생애를 정답게 껴앉는다.

 

친구인 문병학 시인의 말마따나 사람 자체가 대책없이 따뜻해 시마저도 훈훈하다.

 

편편마다 사라져가는 전라도 입말이 생생한 활력을 준다. 입말이 많으면 많을수록 언어 생활이 풍족해진다는 그의 철학이 '몸의 기억'을 촘촘히 되살려냈다.

 

아버지를 닮은 '어금니 꽉 깨문 조각달'이 뜨는 황방산 첫째 고개를 떠올렸고, '젖은 짚 태우는 냄새'와 '꽁보리밥 짓는 냄새'와 '쇠죽 쑤는 냇내'가 가득한 골목을 그려냈다. 오랜 관조 끝에 진한 삶의 체취를 담아 살구꽃으로 피워낸 결실이다.

 

"이번 시집은 철저히 고향 얘기로 일관했습니다. 과거로 돌아가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옛 고향 이야기를 통해 각박한 삶을 건드리고 싶은 문제의식이 좀 더 적극적으로 반영됐습니다. 경제 논리에 맞짱 깔 용기도 배짱도 없는 저의 현주소를, 가난한 풍정을 통해 쓰라리게 짚고 싶었거든요."

 

가망없는 세월을 견뎌낸 헛바람 새던 말씨를 찾아서 보다 치열하게, 뒷심 짱짱하게 세월을 가꾸고 싶다는 그.

 

부족한 자신을 사람 대접 해줬던 정양 우석대 명예교수, 오탁번·고형진 고려대 교수, 청년 문학회 시절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김용택 이병천 안도현 시인, 친구 문병학 시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고 덧붙였다.

 

우석대 국문과, 고려대 국문과 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1998년 계간 「시안」 신인상에 연작시 '황방산의 달'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해 현재 전북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