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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복효근 시인 여섯번째 시집 '마늘촛불'

잔잔한 일상 고요한 자연…낮고 깊은 목소리로 말걸기

"얇게 저며놓은 마늘쪽에 초록색 심지 같은 것이 박혀 있는 게 마치 촛불 같았습니다. 무심코 된장에 찍어 씹어 삼키는데 심지에 불이 붙은 것 마냥 헛헛한 속을 밝혀주더군요. 저 역시 누군가에게 자신을 오롯히 태워 환하게 밝혀주는 존재가 되고 싶었어요."

 

복효근 시인(46)이 여섯번째 발자국 「마늘촛불」(애지)을 내려놓았다. 그는 수줍음이 많은 대신 차분하게 대상을 관찰하고 그것에 대한 속 깊은 이해를 할 줄 안다. 자연과 내밀하게 교감하고 그것의 애환과 인간의 애환을 읽어낼 줄 아는 그의 시선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이 마을 숲엔 몇 십 년 묵은 / 아름드리 상수리나무가 모여 산다 / (…) 나무를 쳐댈 때마다 나무는 굵은 눈물 같은 상수리를 / 한 소쿠리씩 쏟아냈을 것이다 / 벗겨진 제 상처를 안으로 오그리며 / 나무는 더 멀리 가지를 뻗었을 것인데 / 그 가지 끝에 새들이 둥지를 틀었다.' ( '상수리나무 스승' 중에서)

 

둥치도 있고 큰 생채기도 있는 상수리나무에 새가 둥지가 틀었다. 새들의 터전을 마련해준 나무는 모든 것을 희생하는 모성을 연상시킨다. 야생화를 좋아해 자연의 높이로, 깊이로 이르는 길을 쏘다닌 지 벌써 10여년 째. 빛깔과 고요로 쏟아놓은 자연의 비밀한 소리에 자신의 귓가를 슬며시 내려놓는 시가 많다.

 

그는 그닥 철학적이지도 종교적이지도 않은 자질구레한 일상에도 관심이 많다.

 

'삶은 곧 숙제'라는 관념적인 명제를 어린아이 숙제장에 동그라미를 그려주듯 얹혀놓은 시 '숙제와 폐타이어'와 아파 누워있는 그가 심심할까봐 병실 바닥에 앉아 천연덕스럽게 마늘을 까는 아내를 소재로 한 '아줌마, 아내'엔 그녀를'곰같은 여자'라고 하면서도 애정으로 수긍하는 그의 면면이 드러난다.

 

시가 일상성을 싸안고 인정하면서 그것으로 돌아가는 그의 삶과 닮아있다. 덮고 나면, 눈썹달이 환히 뜨는 미소가 번진다.

 

남원 출생인 그는 1991년 계간 「시와 시학」으로 등단, 시집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버마재비 사랑」「새에 대한 반성문」 등을 펴냈다. 시선집으로는 「어느 대나무의 고백」이 있다. 편운문학상 신인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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