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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메아리] 스승 삼기 놀이 - 전희식

전희식('똥꽃' 저자·농부)

이렇게 말 하는 사람을 본 적이 있다. 이 세상에서 사는 한 평생은 '지구별 여행’ 중인 것에 불과하다고.

 

지구여행 중이라? 우주를 무대로 하는 존재들이 잠시 거쳐 가는 순간이 인간의 삶이라는 말인가? 내가 바로 그 주인공이고? 그것의 가부를 떠나 현실이라는 맹목성에 매이지 말고 삶에 대해 '단지 바라 볼 수 있는 힘’을 가지라는 충고라고 생각한다.

 

여행객은 생소한 것도 고생하는 것도 투덜대거나 마다하지 않는다. 도리어 신기해하면서 즐긴다. 절박한 현실을 늘 이렇게 놀이처럼 대할 수는 없을까? 성실하고 진지하되 놀이처럼 즐거워 할 수 있다면 고통이나 번뇌도 여행지에서 겪는 특별한 경험처럼 흥미로울 것이다.

 

홈 스쿨을 하는 열일곱 살과 열아홉 살의 소년 둘이 우리 집에 왔었다. 생태적인 생명농업을 중심으로 닷새 동안 살다 갔는데 아주 재미있는 놀이를 하나 했다. 스승 삼기 놀이였다.

 

닷새 동안 같이 살면서 장계면민의 날 행사장에도 갔었고 농협에 가서 모판 반납도 했었다. 감자밭에 가서 호미로 풀도 맸고 논에 우렁이 넣는 일도 같이 했다. 그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것이 바로 스승 삼기 놀이였다.

 

모내기 하는 날 우리 집에서 한 솥밥을 먹은 사람은 모두 아홉 명이었다. 겨우 일곱 마지기 논에 (보행)이앙기로 모를 내는데 많은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서울서 두 사람. 함양, 수원, 전주에서 각각 한 사람씩 왔었다. 두 소년과 나, 그리고 우리 아들. 이렇게 모인 아홉 사람은 저녁을 끝내고 찻상에 둘러앉았다. 보이차를 마시면서 놀이를 시작했다.

 

몇 사람은 돌아갔지만 십대 중반에서 오십 대 중반까지인 여러 층위의 사람들이 같이 할 수 있는 놀이를 고르다가 시작 한 스승 삼기 놀이는 기대 이상의 감동과 재미를 주었다.

 

놀이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돌아가면서 아무나 한 사람을 스승으로 삼아서 평소에 품고 있는 의문과 고민을 지극한 존경과 믿음으로 여쭙는 것이었다. 스승이 된 사람은 정성을 다 해서 해답을 주는 식이다.

 

오십 살인 아저씨가 물었다.

 

"자유라는 것은 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도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것이라고 여기는데 그게 참 쉽지가 않습니다."

 

열일곱 살 소년 스승이 한참 쑥스러워 하다가 대답을 했다.

 

"사람이 안 자유로울 때도 있는 거 아녀요? 자유로워야 된다고 너무 거기에 얽매이지 않으면 될 거 같은데요."

 

이 말을 듣고 오십 살 아저씨는 공손하게 합장을 해 보였다.

 

열아홉인 내 아들이 스승이 되었다. 내 차례가 되어 무릎을 꿇고 앉아 질문을 했다.

 

"자식이 하고자 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들 때가 있는데 그럴 때는 남의 자식이면 차분하게 객관적일 수 있으나 제 자식이라는 것 때문에 감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낮에 논에서 같이 일 하면서 있었던 아들과의 다툼이 부끄럽게 떠올라서 하게 된 질문이었다.

 

아들 스승님이 잠시 생각을 고르더니 한참 만에 대답을 했다.

 

"자식도 같은 생각을 할 것입니다.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이 부모 마음에 안들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도 차마 어렵게 입을 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죄송했을 것입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그 다음은 잘 될 것 같습니다."

 

이 대답을 하는 아들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내가 궁리 끝에 이 놀이를 제안했던 것은 우리 아들도 홈 스쿨을 하는지라 모든 이를 스승으로 여기고 세상 곳곳을 학교 삼았으면 해서였는데 정작 이 놀이에 참여한 어른들이 더 좋아했다. 널리 전파할 만한 놀이로 여겨진다.

 

/전희식('똥꽃' 저자·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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