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람들의 따뜻한 연대
강영숙(43)씨의 세 번째 소설집 「빨강 속의 검정에 대하여」(문학동네 펴냄) 속 등장인물은 대체로 외로워보인다. 실제로 막 실연한 이들도 있고, 가족이나 친구 없이 홀로 살아가는 이들도 있는데 그렇지 않은 인물들에게까지도 주위에 누가 있고 없고와는 무관하게 작품집 전반에 외로움이 흐른다.
회사원 겸 소설가로, 또 두 아이의 엄마로 외로움을 느낄 새도 없는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을 것 같은 작가는 이렇게 외로운 이들을 잔뜩 불러모은 데 대해 "외롭지 않나요? 혼자도 외롭고, 여럿이어도 외롭고, 또 여럿이어서 외롭고……"라고 하며 담담하게 웃는다.
이런 말투는 소설의 문체와도 닮았다. 하나같이 외롭고 고독한 이들의 단조로운 일상을 '쿨’한 듯, 무심한 듯 담담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어조에는 그러나 큰 덩치 안에 세심함을 감춘 '자이언트 언니’('자이언트의 시대’ 중)와 같은 따뜻함이 있다. 그 따뜻함은 작품 속에서 주위 사람들과의 연대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표제작 속 주인공 령은 매립지에 들어선 신도시 아파트에 혼자 사는 여성 직장인이다. 사는 곳에도 애착이 없고, 직장에서도 동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그의 권태로운 일상이 제3자인듯 무심한 령의 시선을 따라 그려진다. 그러나 직장 동료가 함께 교외 나들이를 가자고 제안한 이후 령의 삭막하고 메마른 일상에 보일듯 말듯한 생기가 돋아난다.
또 다른 수록작 '갈색 눈물방울’에서도 외로운 이들의 연대가 힘을 발휘한다. 5년을 만난 남자친구과 헤어진 후 치통보다 더한 실연의 아픔에 시달리던 화자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영어학원에 찾아가지만 예상치 못한 영어 실어증이 찾아와 수업시간 내내 땀만 흘리다 돌아온다. 그 실어증이 치유된 것은 같은 빌라에 사는 동남아 여자가 실연의 아픔보다 더한 치질의 통증으로 신음하는 것을 보고 도와준 이후였다.
간단한 말 한 마디 입 밖에 내지 못했던 주인공이 동남아 여자가 돌아간 후 수업시간에 자신이 지어낸 동남아 여자의 삶 이야기를 유창한 영어로 쏟아내는 장면은 '강영숙표’ 유머가 묻어나는 인상적인 장면이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이 다 힘들고 외롭지만 죽지는 않는다. 그게 중요하다"고 웃으며 "피로 맺어지지는 않지만 같은 시간대, 같은 공간에 있는 가까운 사람들과의 일상적인 연대 하에서 외로움을 극복하는 그런 순간들을 포착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총 아홉 편이 수록된 이번 작품집에서 눈에 띄는 점 중 하나는 자연재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는 점이다. 태풍과 사이클론, 지진, 쓰나미 등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자연재해들이 직간접적으로 등장해 단조로운 일상 속에 녹아든다.
전작들을 통해 환상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들며 강렬한 이야기들을 선보여왔던 그는 "이번 작품들이 전작에 비해 기가 빠진 듯한 느낌을 줄 것도 같은데 한 템포 정도 천천히 가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며 "요즘 읽는 책들도 음악처럼 강하다가 따뜻하다가 하는 강약 있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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