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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窓] 비정규직은 현대판 노예? - 권순택

권순택(문화사회부장)

우려가 현실로 드러났다.

 

비정규직의 고용 안정을 위해 도입한 비정규직법이 되레 비정규직들을 길거리로 내쫓는 대량 해고 촉진법으로 변질된 것이다. 이 같은 사태는 이미 예견되어 왔지만 정부와 여야 정치권의 안이한 현실 인식과 서로 '네 탓'이라는 정쟁만 일삼는 바람에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비정규직법이 시행된 지난 1일부터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2년차들이 파리목숨 마냥 일터에서 쫓겨나고 있지만 정부에서는 얼마나 많은 비정규직들이 해고되고 있는지 정확한 집계마저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청소용역 등 저임금 단순근로자 뿐만 아니라 대덕연구단지의 박·석사급 등 해고사태는 전방위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형국이다. 특히 정부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공공기관에서는 이른바 '기획 해고'로 때 아닌 실직 한파가 더 매섭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정부 여당과 야당은 이미 시행된 비정규직법의 '1년6개월 유예' '6개월 유예' 등을 놓고 서로 공방만 펼치고 있다.

 

정말 한심하기 짝이 없다.

 

당장 비정규직들의 목이 날아가고 있는 마당에 법안 유예만을 놓고 옥신각신하는 정치권의 행태는 아직도 사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처사다.

 

"월급 안 올려줘도 괜찮으니 예전처럼 일만 하게 해 주십시오" 고3 수험생을 둔 40대 해고 가장의 피맺힌 절규다.

 

"매일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심정입니다. 정규직 안 해도 좋으니 짜르지만 못하게 막아주세요" 병원 비정규직 만 2년차를 앞둔 여성근로자의 하소연이다.

 

사실 비정규직은 현대판 노예나 다름없다.

 

쥐꼬리 급여에 언제든 맘대로 짜를 수 있는데다 노조 가입도 못해 최소한의 자기보호 수단도 없는 '비인격적 존재'에 불과하다. 그들에겐 '입'마저도 없다. 고용주는 물론 같이 일하는 정규직 직원 눈치도 보아야 하기 때문에 하소연도 푸념도 못하는게 현실이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 '신분차별이 없는 민주 평등사회' 라는 말은 비정규직에겐 그저 구두선(口頭禪)일 뿐이다.

 

정부와 정치권 심지어 같은 근로자인 노조에서 조차 그들을 외면한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희망근로 프로젝트, 사회적 기업 등 용돈벌이 수준에 불과한 고용창출 대책이 아니라 당장 비정규직의 무단 해고사태부터 막아야 한다. 그러고 나서 근원적인 대책마련에 나서는 것이 순서다. 길거리로 쫓겨난 비정규직들을 다시 원직 복귀시킬 수 있는 재주가 있다면 몰라도….

 

기업과 고용주들도 무조건 자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군산 타타대우상용차가 좋은 본보기다. 이 회사는 지난 2003년 노사합의로 매년 비정규직의 10%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오고 있다. 이 약속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은 올해도 지켜져 비정규직 320명 가운데 42명이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등 지난 7년간 250명이 혜택을 입었다. 이에 힘입어 2004년 회사매출이 2923억원에 머물던 것이 지난해 6700억원으로 2배이상 껑충 뛰었다.

 

노조도 정규직의 기득권 보호 뿐만 아니라 같은 동료인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적극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약육강식이 판치는 '자본주의 정글'에서 공생 공존의 '사람사는 세상'을 함께 만들어 가는 것이 우리 모두의 시대적 책무이다.

 

/권순택(문화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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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택 kwon@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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