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모(지방팀장)
인도에서 주류를 이루는 힌두교의 수행자나 성직자를 사두(sadhu)라 부른다. 사두가 되려면 보통 4-6년 과정에 걸쳐 점성학, 심리학, 민속 의학, 수학, 철학, 천문학 등 온갖 분야를 다루는 사두학교를 졸업해야 한다.
학교를 마치면 '일체 모든 사물이 스승'이라는 힌두교의 교리에 따라 죽을 때까지 세상을 유랑하며 살아간다. 유랑하는 동안엔 세상사 모든 것을 멀리하면서 철저하게 무소유라는 원칙을 지킨다. 무소유의 기준인 돈, 이성, 집을 갖지 않은 채 길거리에서 모든 생활고를 해결한다. 대개 사두의 겉모양은 머리와 수염을 깎지 않은 더부룩한 모습에, 롱기라고 부르는 천으로 중요 부분만 가린 채 식사를 해결할 깡통과 시바·브라만·비슈누를 상징하는 긴 삼지창을 들고 다니는 행색이다. 삼지창과 깡통을 든 사두를 만나면 힌두교 신자들은 먹을 것을 주기도 한다. 속인들의 눈엔 일반인들이 죽을 때까지 집착하는 의식주와는 철저히 인연을 끊은 채 딴 세상에서 살아간다.
20세기 들어 자본주의 논리가 세계경제를 지배하고 있다. 자본주의는 보는 시각에 따라 수없이 많은 얼굴로 나타나지만, 기본적으로 이윤의 극대화를 첫 번째 목적으로 두는 경제활동으로 이루어지고, 그 이면엔 재화에 대한 탐욕이 자리 잡고 있다. 유교주의적 색채가 강한 우리나라의 경우 자본주의의 이면을 애써 감추려 노력했지만, 이젠 새로운 세대들에겐 부자가 최고의 꿈이 되었고, 탐욕이라는 말에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일선 교사의 말을 빌면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물으면 점잖고 고전적인 직업군이 나열되었지만, 지금은 '부자'가 대세를 이룬다는 전언이다. 지금의 세대에겐 다국적 기업의 값비싼 브랜드가 선망의 대상이고, 백만장자 억만장자가 미래의 꿈이다.
올해 들어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목들이 잇따라 스러지며,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2월 16일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한데 이어, 5월 23일 노무현 전대통령, 8월 18일 김대중 전대통령이 서거했다. 민주주의와 인권이란 단어의 한복판을 지키던 세분이 세달 간격으로 유명을 달리하며, 국민 모두가 충격에서 헤어 나올 시간적 여유조차 주지 않는 2009년이다.
큰 별들이 지면서 던져준 충격은 국민들의 가슴 속에 삶과 죽음에 대한 온갖 상념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든다. 나는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나, 앞으로 어떻게 사는 게 옳은가, 깊은 밤에 잠 못 이루고 끝없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는 이도 숱하게 많을 것이다.
다양한 가치관이 교차하는 다원주의에선 이들 질문에 대한 해답은 순환논리에 빠지기 십상이다. 정답은 하나일 수 없고, 누군가 그럴듯한 해법을 내놓아도 숱한 공격을 받을 게 뻔하다. 하지만 누구든 인생의 황혼녘에서 자신의 뒤안길을 정리하다 보면 젊은 날의 호기 넘치던 논리는 모두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국가적인 거목들이 잇따라 우리 곁을 떠나는 2009년이 우리 모두에게 지난 흔적을 뒤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하길 바란다. 그러면 사회적인 소음 수준이 크게 낮아지고, 그 만큼 살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김경모(지방팀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