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은(전주시민미디어센터 사무국장)
국회가 재래시장과 가까운 곳에는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SSM)의 진입을 규제하는 법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동네상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대기업은 대형마트로도 부족한지 동네 구석구석 슈퍼 슈퍼마켓(SSM)의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 재래시장과 동네슈퍼는 물론, 동네 책방, 동네 주유소, 동네미용실, 동네 빵집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괴물처럼 말이다. 그런데 시장친화적인 정부는 스스로 경쟁력과 자생력을 키우라고만 한다.
흔히 재래시장이나 동네상권을 보호해야 논리로 경제적 가치를 논할 때가 많다. 그러나 이런 경제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경제적 가치 말고도 우리가 재래시장이나 동네상권을 보호해야 하는 중요한 사회문화적 가치가 있다. 바로 소통의 가치, 공동체적 삶의 가치이다.
필자의 경험(필자의 부모님은 오랜 세월 동안 동네슈퍼를 운영하셨다)에 비춰볼 때 동네가게는 소통의 공간, 정보의 공간, 나눔의 공간이다. 동네 아이들부터 어르신들까지 동네어귀에 있는 슈퍼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고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때론 가게는 마실 나온 동네아주머니들의 사랑방이 되기도 한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이에겐 반갑기도 한 추억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또 외지인들에게도 중요한 정보 습득의 공간이다. 사람을 찾을 경우나 방을 구 할 경우에도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곳이다. 이러한 소통은 동네슈퍼에는 있지만 대형마트나 편의점엔 없는 정감 있는 상품이다.
몇 년전 외국에서 꽤 오래동안 머무를 기회가 있었다. 처음엔 그 도시의 중심가에 있는 대형마트를 자주 찾았다. 딱히 많은 것을 살 필요가 없었지만 음료수 한 개 를 사려해도 대형마트를 찾았다. 돌이켜 보면 편리해서가 아니었다. 그건 소통의 두려움이었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물건 값이 얼마인지 물어보기도 두렵고 해서 찾아던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일상적인 대화에 어려움이 없어지자 대형마트보단 근처의 동네가게가 훨씬 편하고 친근했다. 매일 들리다 보니 가게 주인과 안부도 주고받고 동네 사정도 알게 되었다. 지금도 그 도시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재래시장 역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흔히 외국 여행을 가면 대부분 재래시장을 들리곤 한다. 상품을 사려는 이유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재래시장에 가면 그 나라의 문화 그 도시의 문화를 가장 잘 알 수 있고 소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장소가 아니라 문화를 체험하고, 소통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여행 안내서를 보면 대부분 그 지역의 오래된 재래시장이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그만큼 재래시장은 경제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중요한 공간인 것이다.
정부는 대형마트나 SSM 규제를 세계무역기구(WTO) 무역협정 위반이라고 강조하지만 유럽 각국은 오히려 규제 정책을 강하게 펴고 있기도 한다. 물론 대형마트가 다양하고 상품들을 쾌적하고 값싸게 쇼핑할 수 있는 편리함도 있다. 그러나 편리함과 경제적 가치만을 최우선으로 한다면, 또 다른 중요한 사회문화적 가치를 잃게 될 것이다.
/최성은(전주시민미디어센터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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