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사람들의 세상사는 이야기, 소박하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엮어
"아름다운 것들은 왜 그렇게 수난이 많지요? 아름다워서 수난을 겪어야 한다면 그것처럼 더 큰 비극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나 그 수난을 꿋꿋하게 이겨내는 힘이 있어 아름다움은 생명력이 있지요. 그 힘을 나는 '꽃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절판 4년. 이유야 어찌되었던 「혼불」은 아름다워서 수난을 겼었고, 그 수난을 꿋꿋하게 이겨냈다. '꽃심'을 지닌 소설 「혼불」과 작가 최명희(1947-1998). 한동안 서가에서 자취를 감춰 독자들을 애태웠던 「혼불」이 지난 7월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 「혼불」은 1930~40년대 남원과 전주를 주요 배경으로 몰락하는 종가(宗家)를 지키려는 종부(宗婦) 3대와, 이 씨 문중의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거멍굴 사람들의 삶을 그린 대하장편소설. 1996년 12월 한길사를 통해 전 10권으로 출간된 후 140만 부가 팔렸으며, 교보문고가 각 분야 전문가 100명에게 조사·의뢰한 결과 '90년대 최고의 책'으로 선정되기도 한 이 땅 문학사의 영원한 기념비다.
"언어는 정신의 지문(指紋)"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새롭게 출간된 「혼불」에서도 작가가 쓴 원고지 칸칸이 문학의 혼은 불꽃처럼 피어난다. 평범한 사람들의 그저 그런 이야기, 누구나 무심히 지나치는 이야기, 한 맺힌 이야기, 깊고 낮은 한숨 소리, 꽃잎 피고 지는 소리…. 「혼불」은 세상사는 이야기들이 가슴에 쌓여 온 몸에 차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혼불」은 세상사는 이야기들이 뭉치고 어우러진 이야기들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불덩이를 이뤄, 결국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 나간 작품이다. 최명희의 작품에서 보여주는 그 흔전한 언어의 잔치를 누리다보면, 한 인물의 삶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줄 수 있는 지도 사뭇 깨닫게 된다. 그래서 「혼불」을 가리켜 소설가 최일남은 "미싱으로 박아댄 이야기가 아니라 수바늘로 한 땀 한 땀 뜬 이바구"라고 감탄했으며, 고은 시인은 "정교하게 만든 정신의 끌에 피를 묻혀가며 새긴 처절한 기호"라며 몸서리쳤던 모양이다.
우리말과 글의 우수성을 되새기기 위한 한글날 563돌.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요, 모국어는 모국의 혼입니다. 저는 「혼불」에 한 소쿠리 순결한 모국어를 담아서 시대의 물살에 징검다리 하나로 놓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라고 말하던 작가 최명희. 이승이 아닌 곳에서 그는, 오늘도 잠 못 이루며 언어의 돌을 줍고 있으리라.
/최기우(최명희문학관 기획연구실장)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