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철호(익산본부장)
한(漢)의 유방과 초(楚)의 항우가 중국 천하를 놓고 말 그대로 건곤일척(乾坤一擲)의 한 판 승부를 겨누던 때가 있었다.
항우는 사면초가(四面楚歌)에 몰려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오강(烏江)으로 도망쳤는데 오강을 지키던 관리가 항우에게 권토중래(倦土重來)를 권하며 배에 타라고 재촉했다.
양자강을 건너 강동에 돌아가 후일을 도모하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항우는 모두 사양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어 서른한살에 생애를 마감했다.
"내가 무슨 체면으로 강동에 건너가 부형을 대할 것인가(無面渡江東)."
중국사람들은 '미엔쯔(面子·체면)'의 소중함을 강조할 때 종종 이 고사를 끌어다 쓴다.
하지만 중국사람들도 실리를 위해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미엔쯔'를 스스로 내던진 사실(史實)도 있었다.
19세기 조선의 거상 임상옥(林尙沃)이 북경 인삼시장을 독점하자 중국상인들은 인삼값을 떨어트리기 위해 불매운동을 벌였다.
그러자 그들의 속셈을 훤히 꿰뚫고 있던 임상옥은 어느날 팔리지 않던 인삼더니에 불을 질러버렸다.
임상옥은 조선 인삼이 한꺼번에 불에 타 없어지면 오히려 인삼값이 오를것이다는 뻔한 장사속 이치를 통해 자존심보다 실리 찾기에 나선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중국상인들은 허겁지겁 임상옥을 찾아와 머리를 조아리며 열배 가격으로 타나 남은 인삼을 서둘러 사들였다.
목숨을 건 자존심에 앞서 실리를 위해서는 잠시나마 체면을 뒤로 물릴수도 있다는 사례의 한 대목들 이다.
지난 20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익산 왕궁지역에서 실시한 국정감사와 관련해 최근 지역에서 많은 뒷얘기가 솔솔하다.
익산의 고질적인 문제점과 치부를 보여줘 지역의 자존심이나 체면은 다소 구겼지만 익산 왕궁특수지역에 대한 국회 차원의 조속한 환경개선사업 대책마련을 약속받았으니 익산시는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거상 임상옥에 못지 않는 명분과 실리를 톡톡히 챙겼다고 한다.
특히 이날 국정감사에 나선 의원들이 익산농장과 왕궁특수지역 시설을 둘러본 뒤 심각성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고 환경개선을 위해서라면 현정부에서 그토록 중요시하는 4대강 살리기 예산의 일부라도 우선 이곳으로 돌려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등 나름대로의 처방책을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 내던졌으니 재차 돌이켜 생각해봐도 이번 국정감사에서 익산시는 실리챙기기로 결코 밑지는 장사를 하지 않은것 같다.
사실상 익산시는 그동안 왕궁특수지역의 환경개선을 위해 다각적이고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했다.
왕궁특수지역 주민들에 대한 집단이주까지 거론할 정도로 그 어떤 최선책 마련도 마다하지 않했던 익산시는 3,400억여원에 달하는 재원 마련에 발목이 잡히면서 벙어리 냉가슴만 앓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찰나에 국회가 한국폴리텍대학 등에 대한 국정감사를 위해 익산을 방문하다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들은 익산시는 이번 기회를 적극 활용했다.
정부 및 국회차원에서 조속한 대책마련에 나서만 준다면 비록 지역 이미지에 손상이 가는 체면 구기기는 물론 그동안 행정에서 무엇을 했냐는 심한 질타를 받더라도 결코 회피하지 않겠다는 이한수 시장은 백번 듣는것이 한번 보는것보다 못하다는 '백문이불여일견'이란 또다른 묘수를 통해 국회의원들을 왕궁특수지역으로 안내하는 기지를 발휘해 결국 왕궁의 고질적 문제를 풀어나갈수 있는 실리를 챙긴것이다.
지역민의 한사람으로서 매우 만족할만한 국정감사였다고 생각한다.
아무쪼록 익산시는 이번 국정감사를 통해 챙긴 실리가 국회의원들의 립서비스로 끝나지 않고 확실한 결실로 이어질수 있도록 즉각적인 후속 대안 마련 등 보다 만전을 기해주길 당부한다.
/엄철호(익산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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