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식(자인산부인과 원장)
2009년의 마지막 날을 보내며 대학병원 산부인과 교수 몇 분과 송년모임을 가진 적이 있다. 불임과 내분비학, 산과학, 종양학 등의 전공 교수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던 중 화제는 당연한 듯 최근 분만수의 현저한 감소와 함께 산부인과의 어려운 사정이 회자되었다. 의례 그렇듯 산과 담당 교수들의 탄식 어린 이야기를 들으며 출산율을 유지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를 기회 있을 때마다 되짚어야 한다는데 한 목소리가 되었다.
우리나라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겪으며 많은 것을 빠른 시간 내에 성취해 왔다. 그 중 하나가 가족계획사업이다. 한때 우리는 출산율이 현저히 떨어지자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단기간 내에 성공한 인구정책이라 자랑했으나 지금은 그 자랑이 우려스러운 것이 되고 말았다. 필자가 1980년대 무의촌에서 공중보건의사로 복무하던 시절에 읍면 단위에도 보건업무 담당직원이 있었다. 이들은 가가호호 방문하여 산아제한 정책의 핵심사업인 남성의 정관결찰술이나 여성의 난관결찰술 등 불임시술 실적을 다투던 이들이었다. 그러다 90년대 초 전공의 시절엔 대학병원에서 불임수술을 위해 묶였던 난관을 복원하는 수술팀의 일원이 되어 일했던 필자로서는 최근 저출산과 관련된 논의들이 남다르게 느껴진다.
복원수술의 성공을 위해서는 복원하려는 이유에 대한 상담에서부터 환자의 생식력에 대한 객관적 평가, 수술과정의 현미경적 정밀함, 적절한 수술 후 처치, 임신 성공률에 미치는 영향요인의 분석을 통한 지속적인 수술 술기의 향상노력 등이 있어야 한다. 하물며 출산율의 복원은 거시적이면서도 정밀한 노력을 다하여도 선진국의 경험에 비춰보면 일시에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최근에는 중앙정부나 지자체에서도 출산율 증가를 위한 다양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한편으론 출산율과 관련지어, 개인적 가치관에 따라 태도의 편차가 심하여 선진국에서도 항상 쟁점이 되어온 인공유산 문제에 대한 대책도 논의되고 있다. 심지어 병무청은 있는데 출산청은 왜 없느냐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같은 무성한 논의에도 여전히 신생아실의 아기울음소리는 돌아오지 않는다. 과거 출산율 감소는 정책의 결과지만 현재의 낮은 출산율은 본질적으로 젊은이들의 의식의 변화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많은 대책들은 젊은이의 내적 변화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특히 여성의 경우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었던 남성 중심의 과거와 달리 현재는 다양한 피임법의 보급과 함께 여성 자신의 몸에 관한 자기결정 의식이 높아져 있다. 사회경제적 이유로 아이를 안낳는 여성 뿐만 아니라 출산이 인생에 있어 반드시 해야 할 가치 있는 일의 우선순위가 아니므로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말하는 여성이 늘고 있는 것이다. 출산이 의무가 아니라 일생 중 하고 싶은 버켓리스트의 상위를 차지할 때 출산율 복원에 대한 다양한 대책도 효과를 나타나게 될 것이다. 출산 문제가 여성의 주도하에 있음을 인식하고 여성들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김관식(자인산부인과 원장)
※ 김관식 원장은
전북대 산부인과학 교수·전북대학교병원 교육연구실장를 역임했다. 현재 전북대 의학전문대학원 외래교수·대한산북인과학회 재정위원·세계산부인과학회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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