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원(문화콘텐츠팀장)
요즘 학생들은 방학을 싫어한다고 한다. 학기중보다 방학이 더 바쁘기 때문이다. 영어에 수학, 과학, 피아노, 태권도, 미술….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쉴 틈이 없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도 "요즘 아이들이 불쌍하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놀 곳도 없고, 놀 수도 없다.
아이들이 학원을 찾는 것은 공교육의 경쟁력이 약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꼭 그 것 때문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그 보다는 어느 코미디 유행어처럼 "일등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경쟁 때문으로 보인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4년제 대학 2010년 2월 졸업예정자 2483명의 입사지원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토익점수 평균이 769점이었다.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800점은 돼야 한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모두가 취업하는 것도 아니다. 대학 졸업자의 정규직 취업률이 50%를 넘기 힘들다는 사실도 잘 알려진 비밀이다. 그러니 부모들의 입장에서는 아이들을 어려서부터 미리미리 준비시키려고 할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는 '상대평가'가 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하면 내 자식은 다른 사람보다 더 해야하는 무한경쟁에 내몰리게 된다.
정부는 아이낳기를 주요한 정책과제의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일부 자치단체에서는 아이를 많이 나으면 보조금을 준다고 하고, 일부에서는 무료교육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서민생활 안정책으로 정부는 사교육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학부모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사교육비보다 대학의 등록금이다. 통계청에 의하면 2008년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들의 사교육 참여는 75.1%이며, 평균 사교육비는 1인당 월평균 23만3000원이다. 연간으로 따지면 300만원 정도다.
반면에 대학의 등록금은 1000만원에 육박하고 있다. 농촌에서 서울로 자녀를 유학보내기 위해서는 등록금과 생활비 등을 합쳐 연간 3000만원이 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4년 졸업시키려면 1억원이다. 어지간한 살림에서 1억원 만들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피폐해진 농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결국 아이낳기를 기피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사회는 고용없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경기는 나아지고 있다는데 도대체 일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영국의 산업혁명 당시 기계시설을 때려부순 러다이트 운동이 생각난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사회에 중간계층은 없이 귀족과 노예계층만 남을지도 모른다. 부모로부터 재산을 물려받거나 정규직에 취업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는 귀족과 대학을 졸업하고도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상시적으로 생계에 시달리는 노예계급. 또 정규직에 취업해도 대출받은 학비를 값기 위해 평생 고생해야 하는 노예계급.
이처럼 험난한 세상에서 아이낳기를 권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무책임한 죄악이다. 아이낳기를 원한다면 최소한 아이들이 학비의 노예가 되지 않는 세상을 만들어줘야 한다.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와 등록금 상한제가 이전에 비해서는 진일보한 제도임에 틀림없지만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가 미래의 신용불량자를 대량 생산할 수 있다는 경고에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귀 기울여야 한다. 연례행사처럼 되풀이 되는 대학 등록금 인상을 둘러싼 갈등으로 학생과 학부모는 슬프다. 학생과 학부모를 '술푸게 하는'등록금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대안은 없는 것일까?
/이성원(문화콘텐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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