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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窓] 5천만원이 넘으면 쪼개라 - 김재호

김재호(경제팀장)

2010년 경인년의 첫 달이 갔다. 사람들은 단순한 호랑이 해가 아니라 백호의 해라며 들떠 있었지만, 백호의 포효는 커녕 가슴 찢어지는 울부짖음으로 시작한 사람들이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그야말로 세밑에 기습적으로 영업정지 조치를 내리면서 은행 철문을 내려버린 전일상호저축은행 사태의 피해 예금주들이다.

 

노점상 할머니, 포장마차 아주머니, 구멍가게 아저씨, 꽃집 철이 엄마, 명퇴한 아저씨, 돈 많은 구두쇠 할아버지 등 우리 주변의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웃들이다.

 

그들에게 지난 1월은 지옥 속의 세월이었다. 또 애간장을 태우며 지냈지만 정작 해결된 것도 없는 상태에서 지금 시작된 2월에 실낟같은 희망을 걸어보지만, 불안하고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어떻게 모은 재산인데 하루아침에, 이렇게 허무하게 날릴 수 있단 말인가. 말이 안된다. 으리으리하게 꾸민 은행, 상냥한 은행원들, 높은 금리, 따뜻한 차 한 잔. 전라북도에서 제일 크다는 저축은행, 전국적으로도 손가락 몇 번째 꼽는다는 저축은행이라고 자랑해서 믿었는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일이다. "늑대같은 놈들! 요괴같은 년들!" 가슴을 치며 후회해 보지만 목숨같은 내 돈은 찾을 길이 막막하다.

 

"예금자보호를 위해 안내하고 있다고? 저축은행을 거래하는 노인들에게 고지했다고? 그래서 물어보았지. 정말로 노인들에게 예금자보호제도에 대해서 고지 의무를 다했느냐고. 그랬더니 돌아오는 답이 '고지는 했지만 인원이 부족해 효과를 제대로 거두지 못했다'고 하더군. 금감위는 중대과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해. 예금자보호제도 운영상 문제점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는 하지만, 정부에서 책임을 져야 해."

 

하지만 현실은 얼음장처럼 차갑다.

 

지난 1일 전북도청 중회의실에 행정부지사를 비롯해 6개 시군 부단체장, 도내 경제 관련 기관단체 관계자, 학자 등 24명이 모였다. 여기에는 전일저축은행 피해 예금주 대표들도 참석했다.

 

피해 예금주들은 "기존 주주들이 유상증자를 통해 정상화할 수 있도록 하거나, 제3자인수 방식으로 정상화시켜야 거래 고객들의 피해를 막을 수 있다"며 대책을 호소했다.

 

이들 방식은 예금주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식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부실 규모가 1500억원이 넘는다. 기존 주주가 유상증자를 하든, 제3자가 인수하든 이 부실을 떠안아야 하고, 또 향후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할 재력가, 기업이 있겠느냐는 의견이 잇따라 제시됐다.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 실제로 아무것도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할 수 있는 일이란 겨우 피해 예금주 하소연 듣고, 금융위 방문 주선하고, 국회의원 만나도록 연결해 주는 것 외에 별다른 것이 없다.

 

서로가 답답한 일이다.

 

3일 현재 전일저축은행의 5000만원 이상 예금 피해자들을 위한 대책은 거의 없다. 저축은행 부실 뒤치다꺼리하는 예금보험공사도 관련 예산이 바닥 상태다. 가교은행을 통해 정상화시킨 후 매각하는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 정부이 생각이다. 기존 주주가 거액을 증자한들, 그들을 믿고 돈을 계속 맡겨둘 고객은 없다. 또 수천억 손실이 난 저축은행에 수천억원을 쏟아부을 자본가 찾기란 난망한 일이다. 다만 실낟같은 희망으로, 그런 천사를 기대해 볼 뿐이다.

 

이번 전일저축은행 사태에서 금융 고객들은 '대마불사의 신화는 없다'는 사실을 각인해야 한다. 5000만원 이상 뭉칫돈은 분산 예치해 위험을 줄여야 한다는 사실도 확인하고 가야 한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실천해야 할 일이다.

 

/김재호(경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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