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수(사회적기업 이장 대표이사)
정부가 지원하는 마을만들기 사업에서 많은 전문가들이 마을컨설팅이란 이름으로 참여하고 있다. 컨설팅 과정을 통해 주민을 교육하고 마을에서 필요한 사업을 계획하면 건축, 토목, 조경설계업체가 실시설계를 하고 그 설계에 따라 각 분야에서 시공을 하는 방식으로 마을만들기 사업이 추진된다. 사업단계별로 사업시행자가 달라 처음 기본계획에서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사업이 이루어지거나 서로 다른 개념으로 사업이 추진되어 사업이 누더기처럼 변하는 것을 수없이 경험하였다. 실제로 몇 년전 충남의 한 마을사업의 추진과정에서 방문자센터 건축물이 목조의 아담한 건물로 제안한 기본계획과 달리 벽돌의 우람한 건물로 바꾸어지는 과정에서 기본계획을 한 나는 어떤 문제제기도 할 수 없고 주장도 할 수 없는 암담함을 체험하였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고자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추진하는 문화역사마을만들기 사업에 자문단으로 참여하면서 책임전문가제도를 도입하자고 주장하였다. 책임전문가제도는 기본구상, 기본계획, 실시설계, 시공, 감리, 사업의 시행 및 시설의 운영까지 한명, 혹은 다수의 전문가가 책임을 지고 관리, 감독하는 시스템이다. 책임전문가는 사업을 시행하고 관리할 권한을 가지지만 사업의 성공여부와 투명성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고 이러한 권한과 책임에 따르는 적절한 경제적 보상을 해야 한다.
문화역사마을만들기 사업에 이 제도가 채택되어 사업대상 마을은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이 추진위원회에 마을사업에 적합한 외부 전문가 2-3명을 추천하여 선정하였다. 외부전문가는 명망있는 건축가 한명과 마을 특성에 맞추어 관광, 체험교육, 문화재 등의 전문가로 구성하였다. 한 마을의 책임전문가가 첫 번째 사업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추진위원이 모두 모여 마을사업에 대한 웍샵을 진행한 적이 있다. 1박 2일로 진행한 웍샵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미리 말을 맞추지 않았지만 하드웨어 중심의 계획, 단순 관광소득 중심의 사업내용, 환경이나 경관을 무시한 건축과 공간계획의 문제점에 대해 주민들을 설득하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문화역사마을을 만들자는 이야기를 했다.
그 웍샵 후에 회의에 참석한 문화재 분야의 원로 선생님이 저에게 싱글벙글한 얼굴로 이렇게 이야기하셨다.
"세상에 이런 위원회는 처음 봐. 모든 위원회가 이것 하자 저거 하자, 뭐든지 만들고 세우자라고 결정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위원회는 뭐든지 하지 말자고 하니... 참. 재미있어요. 뭔가 될 것 같아요."
지난 정부에서부터 활발하게 벌어지기 시작한 마을만들기 사업은 여전히 농촌개발사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농촌마을을 위해 지원하는 사업이 여러 분야로 나뉘어지고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주머니만 채워주는 사업이 돼서는 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촌마을의 사회적, 경제적 상황을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진정성있는 전문가를 발굴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전문가들이 책임지고 일할 수 있고 사업의 성과에 따라 경제적인 보상과 사회적인 보상, 즉 보람과 명예를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방식을 통해 행정, 지역주민, 전문가가 협력하는 새로운 마을만들기의 사례가 전라북도에 많아지기를 기대해본다.
/임경수(사회적기업 이장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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