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년 조선 문명 저력은 '역동성'…'경연' '대동법' '조선왕조실록'통해 명암 조명
'진실은 불편한 것이다.'
오항녕 수유너머구로 연구원(49)은 정작 불편한 것은 편견이라고 말한다. 그가 출간한 「조선의 힘」(역사와 비평사)은 당파싸움이나 사대주의로 점철된 역사가 아니라, 500년 역사를 지속한 조선의 역동성에 중심을 둔다. '식민주의'와 이를 극복하려는 역사학계의 노력인 '근대주의'를 '범식민주의'로 간주하고, 이것의 폭력성을 분석해 조선 문명의 저력을 찾았다.
"'근대주의'는 일제 식민사관의 토양이었습니다. 광복 이후 역사학계는 식민사관 극복을 기치로 내걸고, '근대주의'에 빠져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근대주의'를 다시 '근대주의'(식민주의)로 극복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식민사관을 극복하려던 선배 학자들의 치열한 노력을 알지만, 나는 담론이 식민사관에 갇혀 있다고 말할 뿐입니다. 그 틀을 깨면, 그간의 성과가 훨씬 더 선명하고 왜곡없이 드러나리라고 믿습니다."
그는 문치주의의 핵심인 경연, 혁신하는 시스템인 대동법, 사관들이 남긴 「조선왕조실록」 등을 통해 조선의 명암을 조명했다.
대동법은 공물을 현물이 아닌 쌀로 걷고 호(戶)가 아닌 논밭에 세금을 부여하는 제도다. 그는 대동법이 200년에 걸쳐 이루어진 것은 백성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을 찾고 이해관계를 조정했기 때문이라며 경제주의적 환원론으로만 판단했다면, 이와같은 혁신을 가져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광해군의 부활을 어떤 혹세무민으로 단언하고, 실용주의와 중립외교로 해석되는 데 반기를 들었다. 광해군 정권 내내 왕권 과시를 위한 창덕궁, 창경궁, 경운궁(덕수궁), 경덕궁(경회궁), 인경궁, 자수궁 신축이 계속됐다며 이는 빈민 구제가 아니라 오히려 빈민화를 부추기는 결과라고 지적했다. 대명관계에 있어서도 명분보다는 실리를 선택했다고 평가 받았으나, 대동법 실패, 궁궐 건설, 정치세력의 고립 등 내치(內治)의 혼란 때문에 대외관계에서 운신의 폭이 좁았던 것이라고 적었다. 이는 실용주의를 자처하는 현 정권에서도 주의해야 할 대목이며, 실리 없는 명분은 공허하고, 명분 없는 실리는 맹목이라고도 했다.
또한, 실록 없이는 조선 문명을 생각할 수 없듯 현 정권에서 소홀히 되고 있는 국가기록에 대한 감수성을 살려야 한다며 행정 수행과정에서 생산한 문서는 등록을 하고, 시스템에 의해 관리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사람들은 시간과의 경쟁, 미래를 위한 현재의 희생이 우리의 삶을 조금도 윤택하거나 평온하게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조선시대는 앞으로 선택 가능한 오래된 미래 중 하나가 될 겁니다."
충남 천안 출생인 그는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대학원을 졸업,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와 국사편찬위원회 국내사료 연수과정을 수료했으며, 한국고전문화연구원, 충북우암연구소에서 학인들과 만나면서 읽고 쓰고 있다. 앞으로는 실록과 조선시대 사상사에 관한 책도 출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