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모(지방팀장)
어떤 두 개체가 신뢰를 교환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다.
어떤 분야에 오래 종사한 유명 의사가 정밀한 진찰을 거쳐 처방을 내리면 해당 환자는 그 결과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거의 무조건적으로 따른다. 또 명망을 갖춘 변호사가 복잡다단한 사건에 대해 상담하고 어떤 자문을 내릴 경우에도 소송인은 결과에 믿음을 가진다. 이같은 이유는 이들 의사와 변호사가 상당 수준의 전문성과 권위를 쌓아온 데서 비롯된다. 학문적으로는 이같은 현상에 '신뢰의 권위'라는 용어를 붙인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국가 주도적 행정국가를 형성해 온 우리나라의 경우 행정이 수많은 분야에서 나름대로 전문성을 쌓아 왔고, 예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당 수준의 권위를 인정 받고 있다.
신뢰를 얻는 또 다른 방법은 자신이 보유한 정보와 마음을 솔직하게 터놓는 것이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정보를 가공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원래 그대로 상대방에게 제공하는 한편 그런 과정을 투명하게 내보여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의심하지 않도록 만드는 방법이다. 이런 종류의 믿음은 '신뢰의 투명성'이라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가라는 주체가 신뢰에 치명상을 입힌 사례가 참으로 많다.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것도 없이 군사 정권은 국민을 힘으로 억압하며 공포정치를 일삼았고, 산업화 과정에서 부를 쌓은 부도덕한 세력들이 국가와 손을 잡으며 계층간 갈등과 대립을 양산했다. 무능한 국가는 결국 외환위기까지 초래하며 국민들의 가슴에는 불신이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 험난한 세파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민들은 신뢰와 불신을 뒤섞으며 살아야 했고, 주변 환경과 신념에 따라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각자의 성벽을 높다랗게 쌓았다. 믿다가 뒤통수를 얻어맞느니, 차라리 상대를 의심하고 배척하는 불신의 바다에 빠진 것이다.
이런 현실에 모든 구성원이 어느 정도씩의 책임을 면할 수 없지만, 국가의 책임소재가 더욱 크다. 사회가 점차 안정화 되면서 신뢰도를 높여야 할 국가가 엉뚱한 불신을 제조하는 사례가 안타깝다.
백령도 인근에서 차가운 바다로 침몰한 천안함 사태도 국가적 신뢰를 침몰시킨 대표적인 사례다. 시시각각 전해지는 사건 관련 보도와 정보의 조각들은 어긋났고, 보수와 진보는 각자의 입맛에 따라 사건을 재해석하느라 여념이 없다. 군은 기본적인 정보마저 잇따라 수정하며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고, 군이 브리핑에 나설 때마다 또 다른 루머를 서너개씩 만들어 냈다. 모 일간지가 여론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6명이 군을 불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뢰의 추락은 루머를 양산하는 씨앗이다. 삼삼오오 모이면 근거를 알 수 없는 설과 설이 맞부딪치고, 소모적인 토론에 열을 올린다. 군사정권을 거치며 변형된 우리네 유전자들이 언제든 불신으로 덧칠하려는 속성을 발현하는 것은 아닐까.
신뢰는 단시간에 누구 한명의 힘으로 구축할 수 없다는 것이 주요 특질이다. 또 다시 무너진 국가적인 신뢰. 국가의 신뢰는 언제쯤 뭍으로 올라올 수 있을까. 지금의 현실로는 그 날을 기약하기 힘들어 보인다.
이제라도 국가적 역량을 모아 백령도 앞바다에 침몰한 천안함 선체를 끌어올리고, 세찬 조류에 떠도는 진실을 건져내고, 한 발 더 나아가 불신의 바다에 난파된 신뢰를 인양해야 한다.
/김경모(지방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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