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모(지방팀장)
낙관론을 거두지 않는 일부 정관계 인사와 학자들도 있지만, 우리나라 경제가 전반적인 침체국면을 벗어나 상승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서민들은 주변에서 찾기 힘들다.
이런 가운데 최근 공모주 청약에 몰린 자금 규모는 금융시장에 시사하는 바가 상당히 크다. 삼성생명 공모주 청약에 19조8444억원이라는 돈다발이 줄을 이었다. 이번 사례는 먼저 시중에 유동자금이 실제로 엄청나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 주었고, 또 투자처로서 적당한 매력이 주어진다면 언제든 엄청난 자금 쏠림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을 극명하게 확인시켰다.
이번 쏠림현상은 물론 국내 최고 기업인 '삼성'이란 깃발이 꽂혀 있었다는 점에서 긴 세월 동안 떠돌이 신세로 전전하던 유동자금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요인이 강했다. 물론 삼성으로선 사상 최대의 흥행을 멋지게 만들어 냈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도 있다. 그동안 청약증거금 부분에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던 1999년 KT&G의 11조5000억원을 가볍게 뛰어 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공모가격이 상당히 높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라서 의미가 깊다.
자본주의에서 돈되는 투자처에 자금이 몰리는 것은 극히 자연스런 현상이고, 기본적인 원칙이다. 하지만 작금의 현실은 눈덩이처럼 커진 금융자본이 생산적인 분야보다는 투기적인 부문을 기웃거린다는 판단을 낳는다는 점에서 우려감이 높다. 실물시장과 자본시장이 균형을 찾지 못하면 국가경제는 위기를 맞을 소지가 많고, 현실과 가상이라는 커다란 빈틈이 생긴다.
길 잃은 투기자본이 커지고, 이에 따른 허상과 거품이 만들어지면 자칫 유동성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이번 삼성생명 공모주 청약에서 그 가능성을 보았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나오고 있다.
금리를 아무리 낮추어도 투자나 소비 등의 실물경제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상태를 일겉는 유동성 함정은 금융당국이 자금 흐름을 통제할 수 없는 시스템이 무너진 상황이다. 어떤 면에서 이미 유동성 함정의 초기가 이닌가 하는 불길한 전조다. 초저금리 정책이 상당기간 이어졌지만 실물부문에서 피부와 와닿는 뚜렷한 움직임이 없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지난해 말 기준 단기자금으로 분류된 액수는 무려 755조. 이 엄청난 자금이 맛있는 먹잇감이 생기면 너도 나도 달려드는 쏠림현상이 또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제 주식시장도 유럽발 악재로 추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단기간 어느 정도 욕구를 충족시켜 주던 주식시장마저 무너진다면 단기자금들은 어디로 출렁일까.
이미 채권시장도 영향을 받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주식시장의 자금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채권 투자로 이어질 경우 시장금리의 하락 압력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자금을 혈액으로 비유하면, 우리 경제는 심각한 고혈압 단계로 접어든 것은 아닐까. 필요 이상의 혈압은 우리 몸의 균형을 깨뜨리고, 사태가 더욱 악화되면 뇌졸중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이제 고혈압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서둘 때이다. 서민들에겐 꿈만 같은 자금들이 또 다른 세상에선 넘실거린다. 과다한 유동성은 금융시장뿐만 아니라 국민 통합에도 악영향을 미칠 소지가 다분하다.
출렁거리는 금융시장의 압력을 줄일 물꼬가 시급하다.
/김경모(지방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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