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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황석영 장편소설 '강남몽'

현대사속 욕망적 삶 다큐멘터리 보는 듯

"1970년대 초반 강남 일대에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엄청난 발전이죠. 하지만, 그 속도에 부러지고 꺾인 게 많아요. 개인도 그렇고 사회에도 구멍이 뚫리기 마련이죠. 대충 막고 지나간 그 구멍의 마개를 열어 다시 짚어보고자 했습니다."

 

소설가 황석영씨(67)가 '강남'으로 대표되는 한국 자본주의의 형성 과정과 이에 얽힌 인간의 욕망을 그린 장편소설 「강남몽」(창비)을 출간했다. 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에 지난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연재한 소설을 묶은 책이다 .

 

소설은 강남의 대형백화점이 무너지는 1995년 6월에서 출발해 3·1 운동 직후로 거슬러 올라갔다가 다시 199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강남 형성사'를 담았다.

 

황씨는 "1980년대 말부터 '강남 형성사'를 쓰겠다고 해왔는데 계속 미뤄오다 이제야 쓰게 됐다"며 "10권 이상의 대하소설로 쓸 수 있는 양인데 한 권으로 압축해 쓰느라 힘들었다"고 말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 과거처럼 정색하고 시간의 흐름에 따르는 10권짜리 대하 장편으로 쓰는 것은 낡은 방식이라고 생각해 내버려두고 있었죠. 좀 더 자유롭게 쓰고 싶었는데 꼭두각시놀음이 떠올랐어요. 몇 개의 캐릭터로 날렵하게 역사를 짚어낼 수 있겠다 싶었죠."

 

5장으로 구성된 소설은 백화점 회장의 후처가 되면서 '강남 사모님'으로 신분 상승한 화류계 출신의 박선녀, 일본 헌병대 밀정으로 일하다 해방 후 미국 정보국 요원을 거쳐 기업가로 성공한 재벌 회장 김진, 강남 부동산 투기로 큰돈을 번 심남수, 개발독재시대 밤의 암흑가를 주름잡은 조직폭력배 홍양태, 어려운 살림에도 희망을 품고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는 임정아 등이 차례로 등장해 '강남의 꿈'을 재구성한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서 소재를 빌려 1995년 무렵을 현재 시점으로 삼은 소설은 붕괴사고를 당한 박선녀와 임정아 등 각 등장인물의 삶이 얽히고설키면서 하나의 이야기로 절묘하게 수렴된다.

 

황씨는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이 차례로 무너진 1990년대 중반 무렵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며 "지금은 그때보다 질적, 양적으로 큰 성장을 했지만 우리 욕망의 뿌리는 그대로 남아있다"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은 "정치적으로는 형식적 민주주의 시대의 시작, 경제적으로는 개발독재의 종언, 문화적으로는 사회 변혁에 대한 열정으로 지식인의 머릿속에서만 형성돼온 민중이 걷잡을 수 없는 소비사회의 적나라한 대중으로 휩쓸려들면서 욕망에 얽혀가는 시대"라고 그는 설명했다.

 

중심이 되는 다섯 인물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백화점 붕괴사고를 비롯해 제주 4.3항쟁과 여순사건, 5.16 군사쿠데타 등 현대사의 굵직한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방대한 역사와 거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야기는 빠르고 힘 있게 전개된다.

 

박정희, 김구, 전두환 등의 역사적 인물은 실명으로 그려지지만 기타 주변 인물과 이야기의 중심인물은 작가가 만든 이름들이다. "중립을 지키려 노력했지만 모든 사실은 위대한 힘이 있다"라는 황씨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객관적 자료에 근거해 아무런 정치적 가치판단을 하지 않은 채 중립적인 다큐소설 형식으로 사람을 그리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사실을 사실 그대로 밝혀놓고 보니 소설이 굉장히 불온하게 보이네요. 사실 자체가 불온한 거죠."

 

이어 그는 "한국 자본주의 근대화의 그늘과 상처를 다룬 작품이면서 현재 우리 삶의 뿌리가 어디서 비롯됐는지 되돌아봐야 할 때라는 취지에서 쓴 소설"이라며 "현재 우리의 욕망과 좌절, 문제점들은 시간의 상처 속에 그 흔적이 있다"고 덧붙였다.

 

"근대화 과정에는 어디나 상처와 그늘이 있죠. 근대화를 이룬 것은 근대화를 이끈 세력들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온 이름없는 여공과, 007가방을 든 월급쟁이 회사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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