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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은행나무에 담겨 있는 '문화사'

"일월도 우리의 연륜을 묵혀가고 / 철따라 잎새마다 꿈을 익혔다 / 뿌리건만 / 오직 나와 너와의 / 열매를 맺고서 / 종신토록 이렇게 / 마주 서 있노라."

 

구상 시인이 은행나무의 암수를 보고 쓴 '은행-우리 부부의 노래'다.

 

강한 생명력을 지닌 '살아있는 화석' 은행나무는 우리 땅에서도 짧게는 수백 년, 길게는 천 년 넘게 자리를 지키며 우리 민족의 역사를 함께 살아왔다.

 

'은행나무 - 동방의 성자, 이야기를 품다'(문학동네 펴냄)는 나무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을 시도해온 '나무 학자' 강판권 계명대 교수가 한국인의 문화 속에서도 다양한 의미를 가져온 은행나무에 담긴 문화사를 풀어낸 책이다.

 

은행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식물 가운데 소나무 다음으로 많은 나무이기도 하다.

 

키가 47m에 이르는 천연기념물 30호 용문사 은행나무를 비롯해 보조국사 지눌의 지팡이에서 자라났다는 적천사 은행나무(402호), 웅장한 자태의 영국사 은행나무(223호) 등은 모두 오랜 시간 입에서 입으로 전해내려온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은행나무는 인간의 지친 몸을 달래주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다. 은행나무는 수백 년 동안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였다. 마을 사람들은 중요한 일이 있을 때면 항상 은행나무를 찾았다."(45-46쪽)

 

은행나무는 사찰에서도 많이 볼 수 있지만 서원, 정자, 성균관, 향교 등 유교 관련 유적지에서도 빠지지 않는 존재다.

 

공자가 제자를 가르친 '행단(杏壇)'에 착안한 것인데, 실제 공자가 행단에 심은 것은 살구나무였으나 우리 유학자들은 은행나무로 대체한 것이다.

 

"한국의 유학자들이 무슨 연유로 살구나무 대신 은행나무를 심었는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은행나무가 뿌리 깊은 유교정신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 같은 유적지에서 은행나무를 보지 않고 지나친다면 그 의미를 절반 이상은 놓치는 셈이 된다."(109쪽)

 

저자는 책 말미에서 "이 땅에 수백 년 동안 살고 있는 은행나무를 만나는 일은 단순히 한 그루의 나무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생명의 터전을 확인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문학동네. 184쪽. 1만1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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