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철호 (익산본부장)
어느날 함께 길을 가게 된 낙타와 양이 논쟁을 벌였다. 낙타는 키가 커야 좋다고 자랑을 늘어 놓았고, 양은 오히려 키가 작으면 유리한 점이 많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침 한 화원 부근을 지나게 됐는데 화원 안쪽에서 무성한 나뭇가지들이 담장 너머로 뻗어나 있었다. 낙타는 앞발을 세우고 쉽게 나뭇잎을 뜯어 먹었다. 키가 작은 양은 앞발을 담장 위로 올리고 목을 늘려 보았으나 허사였다.
이를 지켜본 낙타는 큰 키가 좋다는 것이 증명됐다며 더욱 의기양양했다. 담장을 끼고 돌자 이번에는 좁고 낮은 문이 나타났다. 양은 거들먹거리며 문 안으로 들어가 화원의 풀을 뜯어 먹었다. 덩치가 큰 낙타는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 보았으나 들어 갈 수 없었다. 그러자 양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격했다. 이만하면 키가 작은 것이 좋다는 게 확인되지 않았냐는 좀 전의 비아냥을 복수라도 하듯 심하게 거들먹거렸다.
결국 둘은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서 우공(牛公)을 찾아가 판결을 요청했다. 우공이 대답하기를 "자기의 장점만 보고 남의 장점을 보지 못하는 것이나, 남의 단점만 보고 자신의 단점을 보지 못하는 것이나 모두 옳지 않다"고 꾸짖었다.
남의 입장은 조금도 헤아리지 않고 자기 주장, 자기 이익만 취하려는 옹고집이 판치는 요즘 세태에 딱 맞는 우화가 아닐수 없다. 한번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더라면 굳이 우공을 찾아가 판결을 요구할 일도 따끔한 훈계를 들을 일도 없었을 것인데 말이다.
이한수 익산시장이 지난달 25일을 기점으로 그간의 심신을 괴롭혀온 법정다툼의 터널에서 완전히 빠져 나왔다. 광주고검 전주지부가 전북대-익산대간의 통합과 관련해 선거법위반 혐의로 기소돼 벌금 90만원을 선고받은 이 시장에 대한 대법원 상고를 포기함으로써 백척간두의 위기 상황으로까지 내몰렸던 그는 정치생명을 지켜낼수 있게 됐고, 아울러 시장직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장장 4개월 반이란 지루한 법정 공방전을 모두 마무리하게 된 이 시장이 요즘 만나는 이에게 자주 언급하는 얘기가 있다고 한다. 모든 개인적 감정과 원망을 훌훌 털어버리고 앞으로는 지역민간의 소통과 화합을 위한 불신의 벽 허물기와 역지사지의 마음가짐을 갖는 지역 풍토 조성에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다짐이다.
재판 후에 갖는 의미있는 심경의 변화이자 각오다. 그동안의 재판과정을 통해 서로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꼭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 토로로 일단은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한편으로는 오랜 세월동안 지역사회에 쌓인 적대와 불신의 벽이 얼마나 두터운가를 단적으로 느끼게 해 준다.
불신의 벽을 허무는 첩경으로 역지사지야말로 지금 익산에서 가장 필요한 키워드(keyword)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한번 되짚어 볼 아쉬운 한 구석이 있다. 역지사지 하는 마음가짐이 꼭 이 시장에게만 필요한가. 분명 이것은 아니다고 본다. 역지사지 정신의 출발은 지역민 전체의 공감대 확보를 통해 시작돼야 한다. 특히나 입만 열면 시민과 지역을 위한다고 떠벌이고 있는 몇몇의 사회 지도층과 지역 정치인들은 더욱더 가슴속 깊게 이말을 헤아려야 한다고 지적하고 싶다.
앞서 사례든 낙타나 양 처럼 그들은 자신의 주장만이 늘상 정당하고, 남을 헤아리지 않는 일관된 옹고집과 꼼수펴기를 지금도 서슴없이 자행하면서 지역민 전체의 마음을 닫게하는 또다른 원인 제공의 장본인이자 갈등유발자이기 때문이다.
아무쪼록 이제는 변해보자.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대한다면 진심은 반드시 통한다는 믿음을 믿고 우리 모두 멋지게 한번 실천해보자.
/ 엄철호 (익산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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