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중 (원광보건대학 교수)
5월은 가정의 달이며, 초목의 생명들이 꽃을 피우고 꿈틀대는 계절의 여왕답게 기념일이 무려 13일이나 되는 의미 있고 아름다운 싱그럽기 그지없는 달이다. 사랑 가득한 가정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방황하며, 정상의 길에서 일탈하는 상당한 학생들의 어두운 미래에 가슴이 아파오는 기성 세대의 입장에서 평소의 생각을 메모해본다.
일등과 일류만이 살아남는 세상이라면 이 지구상에 남겨질 사람이 얼마쯤 될까? 뒷자리에 머무르는 사람들이 있어야만 그들 나름대로의 빛이 날 것이다. 영재와 수재들이 모여 미래를 그려가는 일류대학에서 발생한 생각지도 못했던 비극은 어디서부터 기인되었을까?
학교의 사명과 기능은 어쩌면 교과교육보다 더 중요한 건전한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인성 및 사회성을 고취시켜 주어야 하며, 학생지도의 핵심은 인성지도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교육현장에서 교권이 위협을 받고, 학교의 기본질서가 무너져 내리는 현실에서 적절한 대응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학교교육의 현실은 양적인 팽창은 있을 런지 모르나, 적재적소에 필요한 수준 높은 인재 양성과 배출은 어려울 것이다.
교육의 의미는 지적수준을 깨우쳐 끌어 올리고, 인성을 다듬고 함양시키는 것이 그 목적이며, 탄탄한 인격의 기반위에 쌓여진 지식이라야 영롱한 보석으로 가공 될 것이다. 이질적인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교육의 장에서 교육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때론 강제성도 용인되어야 할 것이고, 학생들의 권리와 자유는 상황에 따라 제한되고 유보될 수도 있어야 한다. 민주교육의 현장에서 체벌의 용납과 인권침해를 정당화 하자는 주장은 결코 아니다. 독일의 철학자 칸트는 '교육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지구촌시대에 살면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면 자신이 그리는 유토피아의 인생을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즉 가난의 대물림은 교육의 불평등에서 기인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선생님이란 호칭이 무척 많은 나라다. 학교와 학원 선생님, 사회의 명사님들, 교양·취미·기술을 생활 속에서 가르쳐 주는 선생님, 주변의 어른을 일컫는 선생님, 작가 선생님 등 존경하고 배우고 이끌어 줄 선생님들이 많은 나라인데도 어쩐 일인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진정으로 앞장서서 깨우쳐 주고 질타하는 선생님이 보이지 않는 까닭은 어째서일까?
세상을 슬기롭게 사는 사람은 한쪽 눈은 크게 뜨고, 한쪽 눈은 지그시 감아본다고 한다. 떠 있는 눈으로는 현실과 앞을 보고, 감고 있는 눈으로는 이상을 그리고 이면(裏面)을 본다고 한다. 이 땅에 계시는 선생님들!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수십 년을 살아갈 지혜를 가르쳐 주시고, 소질과 특기를 찾아내어 알찬 인생설계로 꿈의 나래를 펼 수 있도록 지도하실 선생님을 절실하게 찾고 있답니다. 1980년대 이후 교복과 두발 자유화가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면서 교단에도 새로운 물결이 밀려와 유능한 교육인재들이 교단을 떠나거나 현장에 있으면서도 외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결과적으로 교사들에 대한 사회적 존경과 신뢰가 줄어드는 풍조가 공교육의 불신을 불러오고 결국 교사들과 학생 그리고 학부형들 모두가 피해자가 되었다고 본다.
교육의 틀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역할은 부모와 교사다. 덕망과 실력을 갖춘 소신 있는 교사들이 어깨를 펴고 근무할 수 있도록 교육현장의 분위기가 쇄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가 비포장 길을 의식 없이 터벅터벅 걷는 청소년들을 바로잡아 주는 꾸짖음이 없다면, 우리나라의 교육은 머리로만 살아가는 지식 전달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채 바로서기가 더욱 어려워 질 것이다.
토끼의 해에 토끼와 같은 영민하고 따뜻한 교육의 본틀로 한국사회가 진정한 교육이념이 뿌리내려 교육복지 국가로 거듭 성장하기를 기원해본다.
/ 김형중 (원광보건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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