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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窓] 공무에 '하여가' 를 읊어서야

안봉호 (군산본부장)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어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처럼 백년까지 누리리라.'(하여가)

 

조선 태조 이성계의 아들인 이방원이 고려의 충신인 정몽주를 내 편으로 끌어들일 요량으로 자신의 집에 초대, 연회를 베풀면서 그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읊은 시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단심가)

 

정몽주는 이방원의 하여가에 대해 이 같이 응수했다.

 

이방원은 단심가로 정몽주의 마음을 확실하게 파악한 후 그를 척살하기로 결심했고, 정몽주는 선죽교에서 이방원이 보낸 밀사들에 의해 철퇴를 맞고 최후를 맞는다.

 

이 두 편의 시는 고려말부터 오늘날까지 우리 인간에게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를 묻고 있다. '하여가'를 읊는 사람들은 줏대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며 장수할 수 있다는 것을, '단심가'를 부르는 사람들은 소신을 지키며 힘든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어 단명한다는 것을 각각 시사하고 있다.

 

즉 소신없는 삶으로 영광을 누리며 장수할 것인가, 아니면 힘들더라도 자신의 철학을 지켜 가면서 굳건이 살 것인가에 대해 이 두 편의 시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단심가는 공직자들에게 어떤 유혹과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임무를 수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까지 많은 교훈을 안겨주고 있다.

 

그런데도 오늘날 많은 공직자들이 공무를 수행함에 있어 소신없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면서 '하여가'를 부르고 있다. 어떤 공무원은 뻔히 패소할 줄 알면서도 골치 아픈 민원을 피해 나가기 위해 정당한 행정처리를 요구하는 시민에게 행정심판을 청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 자신의 승진이나 영달을 위해 정치인에 줄을 대고 자신이 갈 길이 아닌 줄 알면서도 달콤한 유혹에 못이겨 양심을 속여가며 부당한 행정행위를 서슴지 않기도 한다.

 

특히 멍하니 일을 하다가 행정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예산을 낭비하는 결과를 초래하면서 엉뚱한 곳에 도로를 개설하는 공무원도 눈에 띈다.

 

이들의 이 같은 일처리는 많은 시민들에게 시간·경제적인 고충과 불편을 안겨주고 더 나아가 시 발전을 좀먹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행정행위를 했던 대부분의 공직자들은 징계를 받는다든지 퇴직후 '왜 내가 그 당시 그렇게 일을 처리했는가' 뒤늦게 후회하며 반성하고 있다.

 

단심가의 '임 향한 일편단심 가실 줄이 있으랴'라는 대목에서 '임'이란 시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공직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철학과 소신으로 해석할 수 있다.

 

공직자들이 철학과 소신을 굽히지 않고 행정처리를 하면 그 당시에 조직에서 왕따를 당하는 등 비록 많은 고충을 겪는다고 해도 진정으로 시민들에게 봉사하고 시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초대 정치인인 벤자민 플랭클린(1706~1790)이 강조했던 "장수가 훌륭한 인생이 아니라 훌륭한 인생이 장수"라는 말이 새롭게 생각난다.

 

/ 안봉호 (군산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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