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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 길을 잃어야 세상이 보인다

해마다 셀 수 없이 많은 여행책이 출간된다.

 

여행책에는 소개된 여행지를 어떻게 찾아가는지, 찾아가는 데 드는 요금은 얼마인지, 그 근처에 무엇이 있는지 등등 '길을 잃지 않고' 무사히 여행하기 위한 친절한 정보가 가득하다.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는 여행의 기술'(김영사 펴냄)은 이러한 책들과는 달리 불친절하게도 '길을 잃으라'고 말하고 있는 책이다.

 

독일 저자 카트린 파시히와 알렉스 숄츠는 "길을 잃어야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며 길 잃기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지도로 무장하면 여행자의 세계는 축소된다. 세계를 파악하는 기준으로 지도를 선택하면, 대도시든 황무지든 할 것 없이 모든 세계는 한정적인 정보만은 담고 있는 곳이 된다. (중략) 그러나 실제로 자세히 살펴보면 지구는 1㎡마다 아주 흥미롭고 세세한 것들을 수도 없이 담고 있다. 길 잃기는 이런 기발한 것들을 만끽할 수 있게 한다."(16쪽)

 

요즘 세상에는 길 잃기도 쉽지 않다.

 

똘똘한 내비게이션이 최적의 경로를 따라 목적지로 안내하고 스마트폰을 켜면 GPS를 이용한 지도 어플리케이션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정교하게 알려준다. 이러한 첨단 기기들과 지도, 나침반도 모두 버리고 길을 떠난다 해도 빼곡히 서 있는 이정표가 '길 잃기'를 방해한다.

 

이 책에서는 어떻게 하면 길을 잃을 수 있을지를 초급자, 중급자, 전문가 과정을 나눠서 안내하고 있다. '길 잃는 법'과 더불어 격투기에서 낙법을 배우듯 '길 잃고도 당황하지 않는 법'도 가르친다.

 

길 잃기에 낯선 초보자들이 어떻게 하면 '문득' 길을 잃을 수 있을까?

 

이 책에서는 무작정 앞사람 따라가기, 변하기 쉬운 사물을 지표로 설정하기, 다른 데 정신팔기 등을 길 잃기 '노하우'로 소개한다.

 

길 잃기를 마치고 길 찾는 법은 더욱 익살스럽다. 아무 길이나 따라가기, 남의 말 무조건 따르기, 무조건 앞으로 가기, 그대로 있기, 개 쫓아가기 등 정말 길을 찾으라고 가르쳐주는 방법인지, 한참 더 헤매라고 가르쳐주는 방법인지 알 수 없는 조언이 나열된다.

 

초급자의 길 잃기가 말 그대로 지리적인 길 잃기라면 중급자와 전문가의 길 잃기는 조금 심오해진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길 잃기 과정에 대한 안내는 인생의 모든 '항로 이탈'에 대한 은유로 읽힌다.

 

"누구나 길을 잃는다. 다만 어떤 사람은 자주 길을 잃고, 다른 사람들은 그리 자주 길을 잃지 않을 뿐이다. (중략) 하지만 길을 잃었을 때 나타나는 숙명적인 결과들은 조절이 가능하다. 즉 길을 잃은 상황에서 점점 심각해져서 삶을 위협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감정적인 흥분이나 정신적 붕괴는 조절할 수 있다."(111쪽)

 

길을 잃고 헤매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기 위해 각종 첨단 기기를 만들어내는 시대에 "길을 잃어라. 대신 침착하게 되돌아오라"는 이 책의 메시지가 색다른 울림을 준다.

 

이미선 옮김. 256쪽.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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