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일 시인 첫 시집 '난'
시인에게 가장 좋은 산타클로스의 선물은 철저한 고독이다. 고독은 고통스럽지만 그 고통의 결과물로 독자들이 따뜻하게 위로받는다. 박 일 시인(44)이 펴낸 첫 시집 '난'(한국문연)은 느림과 비움, 관조와 긍정, 마음의 평화로 안내하는 초대장이다.
난을 좋아해 10년 전부터 난을 키워 사고 파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서 잊고 살았던 '나'를 만났다. 난을 가꾸고 섬기며, 난과 이야기하는 '나'를 내세우면서도 응시하고 감응하는 '나'가 겸손하다.
전남 남해가 고향인 이 사내에게 자연은 상처 입은 영혼을 위로해주는 따뜻한 매개체. 묵정밭에 박혀 애벌레가 갉아먹은 월동배추를 보면서 시인은 온몸으로 쓴 새파란 시를 보았다. '초록의 시'를 알아본 눈 밝은 독자는 새봄 밭을 갈러 나온 누렁소. 그는 '두렁을 행간으로 삼고 / 엎드린 채 맨가슴을 드러내던 // 시는, // 때때로 입마저 얼어붙는 / 혹한의 일이었으리.'('초록의 시')라고 적었다. 삶의 간곡한 시간 앞에서 감사함과 미안함을 배우고 있다는 시인에게서 삶의 고단함과 아픔을 어루만지는 서정을 본다. 시와 삶이 한 덩어리인 그는 시로 삶을 기록한다.
시인은 "몸이 이곳 저곳 녹슬어 지난 6월에 나온 시집을 이제서야 내놓는다"며 수줍게 웃었다. 2006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로 문단에 나온 뒤 내놓은 첫 시집. 그를 향해 밀려들던 온정의 눈빛에 마음을 다해 고개를 숙이느라, 바빴을 것이다. 그를 인도한 강인한 시인은 "그의 시는 잎맥이 섬세한 나뭇잎들로 우거진 그늘을 가려 손금 같은 사람살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전통 서정의 힘을 발견한다"고 했다.
서정시는 아름다운 말로 쓰는 것이 아니라 말을 아름답게 쓰는 것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어쨌거나, 그의 시는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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