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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가리킨 손가락만 보는 경찰

김성중 사회부장

터질 것이 터졌다.

 

최근 불거진 도내 한 여행사의 정관계 전방위 로비사건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실 특정 여행사가 도의회와 도청, 교육청의 해외여행 사업권을 독식하다시피 한다는 소문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또 여행사와 관청간의 부패 고리도 업계에서는 상식으로 통했다. 따라서 사건이 터지자 이번 기회에 경찰이 비리유착 구조의 실체를 파헤치고 관청은 제도적 개선책을 내놓을 것으로 기대됐다. 하지만 그런 기대는 무너지는 분위기다.

 

경찰은 얼마 전 도청 공무원에 대한 무차별 악성 문자 메시지 발송 사건을 수사하다 뜻밖의 대어를 낚았다. 문자를 보낸 여행사 대표의 사무실에서 도내 정관계 공직자에게 보낸 선물과 금품 명단을 찾아낸 것이다.

 

문제는 언론이 보도한 '여행사 로비 스캔들'을 대하는 경찰의 수사 방식과 태도다. 예컨대 언론이 달을 가리키고 있는 데 경찰은 손가락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달이 관행화된 비리유착 구조라면 손가락은 단순한 로비 명단이다. 전북일보가 수사 상황 보도보다 여행사와 관청의 부패 구조 실상을 전달하는데 무게를 두는 것도 그런 연유다.

 

돌이켜보면 경찰은 수사 초기에 결정적 증거 확보를 위한 압수수색 시기를 놓쳤고 피의자에 대한 신병확보도 게을리 했다. 그 틈에 여행사 대표는 연루된 인사와 말을 맞추고 증거를 인멸하는 시간을 충분히 확보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지금 경찰은 금품 로비 명단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정작 경찰이 주시할 부분은 도내에 널리 퍼져있는 유착 구조다. 그런 의미에서 경찰이 확보한 금품 명단은 이번 사안의 본질을 뒷받침해주는 여러 방증 중의 하나일 따름이다.

 

이 때문에 경찰 내부에서조차 '경찰이 요즘 같은 모습으로 어떻게 검찰과 수사권 조정 문제를 다투겠느냐'는 자조 섞인 한숨이 나온다고 한다. 더구나 스스로 '사법처리 문제는 검찰과 협의 하겠다'고 말한 사실을 보면 경찰의 수사 의지와 수준을 알 수 있다. 이 정도면 경찰은 로비 명단 수사만 끝내고 검찰에 몸통 수사를 넘겨야 한다. 엊그제 부임한 장전배 전북경찰청장이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경찰만이 달은 못보고 손가락을 보는 것은 아니다. 로비에 연루된 해당 기관 또한 오십보백보다. 사건이 터진지 보름이 지나도록 전북도와 도의회는 여행사 유착 사건에 대한 사과와 개선책을 거부했다. 오히려 제 식구 감싸기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하다 최근에야 슬그머니 어설픈 대책을 내놨다.

 

여기에다 공직사회에서 사건의 발단이 된 악성 문자 피해 공무원을 원망하는 상황도 문제다. 자신들의 허물을 부끄러워하기보다 다른데서 핑계거리를 찾는 태도는 범죄보다 더 나쁘다.

 

또 있다. 일각에서는 경찰과 언론이 4.11총선 예비후보를 흠집내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주민을 대표해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인물을 검증하는 일이야말로 언론과 사법기관의 몫 아닌가. 더구나 두달여 남은 총선의 시급성과 중대성을 감안하면 공개수사와 실명 보도를 해야 오해의 소지가 없다. 누군지 모르는 익명 보도야말로 흑색선전을 불러와 유권자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이름을 감추면 억울한 피해자도 생긴다. 이런 까닭으로 있지도 않은 음모론을 제기하며 이번 사태를 물타기하는 자들을 색출해 허위사실유포죄로 처벌해야 마땅하다.

 

여행사와 관청간 유착구조의 본질에 대한 수사는 놔둔 채 로비 명단에만 집착하는 경찰, 허물을 모르고 수사 결과에 촉각을 세우는 도청과 도의회는 더 이상 달을 가리킨 손가락만 쳐다보지 말고 진짜 달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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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중 yaksj@jj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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