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환씨 영어시조집 'blue ankle' 펴내
페도라를 쓴 한 노신사가 기자를 찾았다. 호기심 어린 눈빛은 참 맑았다. 목소리도, 발음도 흔들림 없이 정확했다. 정기환(87)씨가 꺼낸 것은 영어시조집'Blue Ankle'(신아출판사·푸른 복사뼈). "독학으로 공부해 15년 만에 출간한 것"이라고 했다.
1993년 전주 팔복초 교장에서 퇴임한 그는 육십 칠세에 '시조문학'으로 등단했다. '영어시조'의 확대는 한국문화의 세계화에서 주목되는 실천적 과제이긴 하지만, 학자들도 섣불리 달려들지 않을 만큼 까다롭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시조의 형식에서 느낄 수 있는 독특한 긴장감을 영어로 살려낸다는 게 흥미로웠다"면서 3행시로서 '영어시조'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영어시조'는 번역을 통해서 한국문학을 접했던 외국 독자들이 한국문학의 형식과 정신을 전하는 새로운 방식이기 때문이다.
6·25 전후 한국의 전통적인 여성상을 풀어낸 시조집엔 단편소설처럼 엮인 서사시조 29수와 창작시조 71수가 담겼다. 대표작'푸른 복사뼈'는 "전쟁으로 인해 헤어진 남편을 찾고자 한 아내가 몇 십 년 만에 남편 복사뼈에 푸른 점을 발견하고 재회하게 된다"는 내용. 모든 시조에 작자 미상인 경기민요 '청춘가'와 '노랫가락'을 얹어 악보와 함께 첨부했다.
시조를 영어로 풀기 위한 장애물은 많았다. 2·3·4·5음절로 이뤄진 한 수가 대개 43음절. 이를 언어 구조가 전혀 다른 영어에 끼워넣는 게 가장 어려웠다. 고민 끝에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 44음절에 맞췄다. 인연이 닿은 캐나다 잉그리드 전주교대 교수의 첨삭으로 체계화할 수 있었다. 이러한 창작경험에 근거한 '영어시조 작법'도 책에 담았다.
아직도 하루에 8~9시간을 영어시조를 공부하고 있다는 그는 시조의 대중화·세계화 시키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했다. 한국문학의 뿌리에 해당하는 시조가 영어를 통해 그 문학적 생명력을 새롭게 인정받게 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영어시조집'Blue Ankle' 출판기념회는 28일 오전 10시30분 전주 관광호텔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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