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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예의지국을 생각하며

▲ 이 규 완 전주덕진중 교장
오랜 만에 외국에 나가 공부하고 돌아온 아들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들른 동내 음식점에서 우연히 모녀가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

 

"오늘 학교에서 즐거웠어?"

 

"우리 담탱이가 나만 미워한다."

 

"왜?"

 

"몰라, 오늘은 앞머리가 길다고 엄마 데리고 오래."

 

"너희 담탱이는 XXX이야! 인권침해야!"

 

"엄마. 나 학교가기 싫어!"

 

"그래라, 이XX 고발해 버려?"

 

옆자리에 앉아 대화 내용을 듣고 있자니 참으로 우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첫째는 교육자로서 느끼는 선생님에 대한 학부모의 편향적 인식이고 둘째는 모녀의 대화가 정겹다기보다는 도리어 무엇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가에 대한 아쉬움이 어깨를 움츠리게 했다.

 

물론 선생님들 중에도 잘못을 저지르고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경우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이는 극히 일부의 현상에 지나지 않으며 대부분의 교사들은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현실에 대한 저항보다는 순응하는 모범적인 분들이 훨씬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녀의 대화 내용처럼 선생님을 무시하고 얕잡아 보는 듯한 부모님의 말씀을 듣고 자란 그 학생이 과연 우리 사회의 동량(棟梁)이 될 수 있을까? 학생의 본분과 규칙에 대하여 지도하고 옳고 그름의 사리판단을 가르치는 '선생님의 그림자는 밟지도 않는다.'라는 말은 앞으로 사극에서나 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어 버렸으니…….

 

또한 모녀가 나누는 대화 내용을 보면, 마치 친한 친구와 혹은 손아래 동생과 나누는 듯한 대화로만 지나칠 수 없는 안타까움이 그 속에 있다. '언어는 곧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의 언어는 고스란히 그 사람이 걸어 온 발자취이며 마음의 거울이다.' 사람들은 말로 소통을 이루며, 말 속에 평화로움이 담겨 있고 말로 사랑을 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나 우리말의 장점은 대화 상황에 따라 높임말과 겸양어가 잘 발달되어 있고 화자의 정서 표현에도 적합한 언어라는 점이다. 아무리 사적인 대화라 해도 막무가내 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너무 지나치지 않을까? 윗물이 맑지 않고서야 어찌 아랫물의 맑음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이는 결코 모녀지간의 정겨운 대화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이렇듯 풍요와 여유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지난날 내 자녀들의 올곧은 성장을 직·간접적으로 도맡아 준 선생님을 존경하고 우러러 본 경외심(敬畏心) 때문은 아닐까? 가정은 우리 사회의 꽃이고 텃밭이며, 초등적인 교육기관이다. 대부분의 인성이 가정에서 길러지며 가정은 기본적인 태도와 사회화가 갖춰지는 장소이다. 가정에서의 언어예절교육이야말로 자녀의 바람직한 성장을 위한 수단이 되는 상대적 가치가 아니라 사람의 품격을 가르는 절대적 가치다. 결코 시대의 변화만을 탓할 일이 아니라 부모 또한 교육현장 일선에서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할 때다.

 

우리 곁에서 언제 들어도 가슴 따뜻한 모녀간의 대면 속에 진한 모성애와 아양스러운 딸 사이에 대화의 꽃밭이 가꿔지며, 다시 한 번 전통적 예절교육을 바탕으로 대국민교육을 새로이 시작해 진정한 한국의 이미지인 '동방예의지국'의 면모를 새로이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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