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현장 이분법적 사고 만연
우리 사회는 모든 학생이 학생다운 학생이 돼야 하고, 모든 교사가 좋은 교사가 될 것을 요구해 왔다. 또한 각자 역할에 대해 우리 사회가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모습들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전통적으로 생각해온 학생다운 학생은 어떤 학생이고, 좋은 교사는 어떤 교사인가에 대해 요즘 현실에 맞게 새롭게 그 모습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는 학생을 미성숙한 존재로 인식하고, 이들을 훈육하고 관리하는 것을 교육의 주된 목적으로 보는 시각이 여전하다. 그러다 보니 학교체제에 순응하면서 소위 말 잘 듣고, 공부 잘 하는 학생을 학생다운 학생으로, 학교가 정해 놓은 규칙과 틀을 벗어나는 학생들을 문제학생으로 규정해 버리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학생들을 가둬놓고 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을 어찌 이런 잣대로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런 기준대로라면 과연 학생다운 학생은 몇 명이나 될까 하는 의문이 든다.
요즘 같은 세태에 좋은 교사 노릇 역시 쉽지만은 않다. 아침 일찍부터 학교에 나와 생활지도를 시작으로, 수업은 수업대로 열심히 해야 하고, 쉬는 시간에는 학부모와 학생에 대한 상담, 때론 밤늦게까지 학교에 남아 야간 자율학습지도까지 열심히 해야 소위 모범적이고 헌신적인 교사 반열에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교사에게 너무 많은 책임과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특히 학생들의 생활지도부분에서는 더욱 그렇다. 분명 교사가 학생들의 인생에 개입할 수 있는 선이 있을 것인데, 도대체 어느 선까지 책임의식을 가져야 하는가 말이다. 물론 교사와 학생간 인간적인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교사는 교사일 뿐, 교사가 학생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잘못한 부분을 묵인하고 방임하자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열악한 현실을 바꾸기 위한 노력보다 교사에게 무한의 희생과 노력을 요구하다 보니 자연스레 학생들에게 과도하게 개입하고, 결국 학생과의 충돌 내지는 인권침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좋은 학생, 좋은 교사는 우리 교육의 궁극적인 지향점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기존에 우리가 지녔던 서로간의 '다움'에 대한 시각을 바꿀 필요가 있다. 소위 범생이 캐릭터의 학생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개성도 표출할 줄 알고, 학교내에서 자신과 관련된 부당한 처우나 문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교사에게 당당히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학생도 되바라진 학생이 아닌, 학생다운 학생으로 받아들여 보자는 것이다.
학생-교사 인간적인 관계로 거듭나야
또한 교사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좋은 교사'라는 상(像)을 만들어 놓은 후, 그들에게 지운 과도한 짐이 과연 교사 개인의 교육적 신념과 의지만으로 해결될 문제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자. 교사 역시 과도한 좋은 교사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보자. 학생과의 관계에서도 눈에 드러난 문제행동에 대한 즉각적인 지도도 중요하지만, 드러난 그 이상의 내면을 들여다봄으로써 학생 개개인의 학생다움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혀보자.
학생과 교사가 학교라는 구조속에서 상하간의 권력관계가 아닌 지금보다 더 인간적인 관계로 거듭날 때 서로간의 긴장은 해소되고, 둘 사이가 기대하는 '다움'에 대한 교집합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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