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권위에 대한 불신 높아져
지난 세월 성장에만 집중하고 달려온 결과 세계가 부러워하는 경제적 성과를 이룩하였지만, 정신문화와 생명의 가치에 대해서는 오히려 더 빈곤해졌다.
서해훼리호 침몰,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 씨랜드화재, 대구지하철참사, 경주마우나리조트 참사, 세월호 침몰, 서울지하철열차 추돌 등 이젠 육·해·공 가리지 않고 사방에서 대형 사고가 반복해서 터지고 있다. 원인을 따져보면 거의 모든 사고가 인재(人災)와 관재(官災)로 요약된다.
이제 국민은 누구도 안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 사건으로 우리사회는 고위험군 사회라는 것이 확인되었으며 정부에 대한 불신, 권위에 대한 불신은 더욱 높아졌다. 서울지하철 추돌사고를 보더라도 승객들이 열차 내에서 대기하라는 방송에 따르지 않고 생명을 걸고라도 객차 문을 열고 모두 선로로 걸어 나왔다고 하지 않는가. 한편으로는 이 무슨 코미디인가 싶기도 하다가 그럴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생각하면 마음이 씁쓸하다.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며 따라야 하는가?
프랜시스 후쿠야마 교수는 한 사회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데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로 ‘신뢰’를 꼽았다.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는 불필요한 거래비용을 줄일 수 있어 사회적 효용을 높일 수 있으며 사회통합에 기여한다.
그런데 최근 OECD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한국은 응답자의 23%만 “정부를 믿는다”고 응답해 조사국가중 바닥권을 보였다. 가뜩이나 신뢰자본이 부족한 터에 이번 사건은 더 더욱 정부불신을 높였다.
무엇을 믿으며 누구의 말을 따를 것인가? 경제성장의 속도전 속에서 빈부의 양극화는 심화되었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약화되었으며 국민을 위해 존재해야 할 관료들은 퇴직 후에도 각종 산하기관에서 관피아로 행세하며 공공의 이익과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선거 때만 되면 “국민을 위해서”라고 외치지만 막상 선거가 끝나면 정파와 계파로 나뉘어 싸우느라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하다. 국민 또한 정부와 정치인들을 믿지 못한다. 도처에 불신이 팽배해있다. 이번 사건으로 교사들은 학생들을 가르치기가 더 어려워 졌다고 한다.
이 봄, 만물이 생동하는 신록의 계절이다. 마지막까지 기다리라는 선내방송을 믿으며 구조를 기다리다가 미처 꽃도 피우지 못하고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우리의 아이들이 바로 이 신록의 청춘이기에 더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마냥 슬퍼만 할 순 없다. 그들의 죽음이 결코 헛되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책임질 사람을 가려내어 책임지게 하고 우리에게 정말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정립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부는 뼈를 깍는 심정으로 도처에 만연한 부정과 부패의 먹이사슬과 제도를 개혁하고 기본이 제대로 작동하는 사회, 신뢰할 수 있는 정부, 정말로 안전한 사회를 만들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거듭나는 길이며 살아있는 우리가 더 이상 부끄럽지 않기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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