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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참 뜻

본질을 외면한 혁신 추진…재주만 부리다 결국 실패 / 공공기관 지향점은 고객

▲ 홍용웅 전북경제통상진흥원장

혁신이라는 말의 홍수다. 기업광고 카피마다 혁신이 키워드다. 정부도 세월호 참사 직후 대대적 국가혁신에 나설 것을 천명한 뒤, 국민안전, 교육, 복지, 보건, 인사, 방위사업, 금융, 재정, 노동 등 전방위 혁신에 부심하고 있다. 개인차원에서도 자기혁신의 비법을 담은 서적들이 베스트셀러에 속속 오른다. 그러나 가장 드라마틱한 장면은 집권당이 연출한 바 있다. ‘보수는 혁신한다!’라는 대단히 이율배반적 구호로 재미를 본 여당의 혁신 화두 선점에 야당은 속수무책이다.

 

용어의 대중성에도 불구하고 그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문 것 같다. 사전에는 ‘새로운 사물과 방법의 도입’이라 풀이돼 있지만, 이것만으론 전혀 성이 차지 않는다. ‘가죽 혁(革)’과 ‘새로울 신(新)’, 이 두 글자가 결합해 이루어진 ‘혁신’이라는 말에는 어떤 조화 속이 있을까?

 

혁신(Innovation)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이는 오스트리아 출신 하버드대 교수 슘퍼터(J. A. Schumpeter)라 한다. 1942년의 역저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에서 ‘혁신은 창조적 파괴’라는, 당시로는 매우 발칙한, 정의를 내렸다. 오늘날에도 자주 인용되는 멋진 표현이다. 추측건대 ‘창조하려는 자는 항상 파괴하기 마련’이라면서 ‘낡은 서판을 부숴버리라’고 일갈한 니체의 영향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창조적 파괴는 고전적 혁신이론의 정수임이 틀림없다.

 

세월은 수다한 정치, 사회적 변전을 배태했고, 혁신에 관한 백가쟁명 또한 지속돼왔다. 그러다 1985년 드디어 혁신이론에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이루어졌으니, 그 유명한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가 장본인이다. 드러커는 ‘혁신과 기업가정신’이라는 저서에서 ‘혁신은 새로운 가치와 고객만족을 창조하는 것’이라는 불후의 정의를 내렸던 것이다.

 

문외한에게는 슘페터의 정의나 드러커의 그것이나 별 차이 없이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그 켯속을 천착해보면 판이하게 다른 개념이다. 슘페터의 정의가 낡은 기술을 부수고 신기술을 도입하자는 ‘공급자’적 입장이라면, 드러커는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와 만족을 주는 것이 진정한 혁신이라는 ‘수요자’중심의 태도를 취한다. 전자가 기업의 기술개발을 중시한 반면, 후자는 시장과 고객의 수용성에 높은 점수를 준다. 다시 말해 혁신성은 과학적, 기술적 중요도에 따라서가 아니라, 시장과 고객에 대한 공헌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가히 패러다임의 일대 전환이라 할만하다. 철저히 고객 입장에서 따져보자는 것이다. 정부의 문제도 상당부분 여기서 찾을 수 있다고 본다. 국민 만족을 궁극 지향점으로 하지 않고 화려한 재주만 부리다 실패하는 정책사례를 얼마나 자주 보아왔던가? 본질을 외면하고 갖은 최신 공법, IT기술로 국민을 호도하는 비인간적, 낭비적 행정사례들을 말이다.

 

또한 공공기관이 국민의 사랑과 지지 획득에 실패하는 이유도 똑같다. 많은 기관들이 고객의 복리보다는 모호한 ‘절대선’을 추구한다. 마치 종교단체나 비영리 사회단체처럼 경영되면서 실적 부풀리기와 예산, 조직 확대가 성공경영의 증표로 내걸린다. 국가사회를 위해 좋은 일 하는 척하면서 예산과 기구를 최대한 키우자는 게 이들의 공통점인 것이다. 단언컨대, 공공기관의 지향점은 도덕이 아니라 고객이다.

 

경제통상진흥원은 이러한 함정에 빠져있지 않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혁신의 본령을 되새기며 경계 또 경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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