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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의 심리학

완전한 귀향 결심키 위해 정주 여건도 중요하지만 심리적 갈등·불편 없애야

▲ 홍용웅 전북경제통상진흥원장

고교 졸업 후 서울 유학길을 떠난 지 어언 40년이 되어간다. 살아온 삶의 절반이 훨씬 넘는 세월을 타향에서 보낸 셈이다. 운명의 부름인지, 작년 말 다시 돌아와 도내 한 공공기관에서 일하게 되었으니 어찌 감개무량하지 않겠는가?

 

되돌아온 고향의 품은 포근했다. 시원스레 구사할 수 있는 사투리가 통쾌했고, 재회한 학우들이 여러모로 뒷배를 봐주어 마음 든든했다. 그리고 긴 객지생활로 단절됐던 고향 분들과의 인연이 이런저런 계기로 신속히 생성되는 게 기뻤다.

 

그렁저렁 10개월이 흘렀지만, 그러나 마음속에는 근원적인 의문부호 하나가 잠복해있다. ‘나는 전북사람인가, 서울사람인가?’ 40년 타향살이에서 항상 전북사람으로 분류되어 왔고, 정권의 향배에 따라 공직생활에서 홀대받는다는 심증 또한 솔직히 없진 않았으며, 동향선배들의 후광을 톡톡히 입지 못한 것도 부인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주위는 온통 고향에 대한 부정적 담론들이 안개처럼 뿌옇게 덮여있었다. 동창회, 향우회에서, 고향은 힘없고 못살고 비전 없는 곳으로 정의되었으며, 전북출신은 비빌 언덕 없이 홀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서글픈 지혜가 전수되었다. 매년 명절이면 식솔들 이끌고 17~8시간 운전하는 고생까지 하사했던 고향 땅. 여기에 드디어 돌아와 일하게 된 것이다.

 

세상살이가 힘들 때 울컥 솟는 망향의 순간을 제외하고는, 이기적이고 매정한 눈초리로 고향을 바라봤던 사람이 돌아와 공직을 맡게 되니 모종의 양심의 껄끄러움이 없을 수 없다.

 

귀향 후 주민등록을 옮겨 ‘페이퍼 전북인’이 됐지만, 가족상봉을 위해 매월 한두 번은 서울행이니 주중 전북사람, 주말 서울사람인 셈이다. 그리고 종종 직원 상대의 일장 훈시 속에 은연중 서울사람 행세하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아직도 서울사람이라는 심리적 우월감을 부지불식 간에 행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중앙정부에서 일한 경력을 내세우며 지방행정의 촌스러움을 타박한 적도 있었음을 자백한다.

 

그런 면에서 한 이방인이 전북 땅에 침투하여 중국의 변검(變瞼) 놀이처럼 고향에선 이 얼굴을, 타지에선 저 얼굴을 연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마음에서 우러난 진정성을 가지고 고향땅과 고향사람을 사랑하는지? 타인들이 나를 고향사람으로 받아들여주고 있는지? 온통 의문투성이다. 이러한 제반 의문은 의식의 심연에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화두가 되었다. 그리하여 수개월의 참구(參究)과정에서 미흡하나마 몇 가지 자신과의 약속을 갖게 되었으니….

 

하나, 서울 이력을 자랑하거나, 거기서 우월감을 길어오지 않는다. ‘마이 스타일’을 고집할망정, ‘서울 스타일’을 강요하진 않는다. 둘, 빠른 시일 내 완연한 전북사람이 된다. 은퇴 후 둥지도 전북에서 찾아본다. 셋, 고향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전북인임을 자부하고, 가급적 희망만을 얘기한다.

 

지극히 내면적 문제를 이처럼 공론화하는 것은 혁신도시 이주자를 생각해서다. 필자와 비슷한 고민에 직면한 분들이 아마도 수백에 이를 것이다. 이들이 완전한 귀향을 결심하기 위해서는 정주 여건도 중요하지만 심리적 갈등 내지 불편이 없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귀향자는 고향에 대한 관심과 애착을, 도민은 이들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가꾸고 나눠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들에게도, 전북에도 더 큰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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