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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 누리려면 '자연으로 돌아가라'

▲ 김윤세 인산가 대표, 광주대 생명건강과학과 교수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에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생인데도 자연을 모르고 도리어 자연을 파괴하면서 자연을 등진 채 부자연(不自然)의 무리(無理)한 삶을 살다가 자연계로부터 주어진 본래의 수명, 즉 천수(天壽)조차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비명(非命)에 가는 비운(悲運)의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어찌 보면 이는 제도 교육이 복잡다단한 현대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자연’을 가르치지 않고 인위 인공 조작 기술 지식의 주입식 교육, 다시 말해 세뇌(洗腦)를 통해 마치 말을 길들이듯이 사람을 길들여온 결과로 나타나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 할 것이다.

 

자연은 인간과 만물의 어머니

 

자연은 인간과 만물의 어머니임에도 유독 인간만은 제 어머니를 모르는데다 오히려 어머니를 외면하고 등지고 괴롭히는 우(愚)를 범함으로써 그에 따른 대가를 받게 된다. 자연계는 1차 경고를 하고 또다시 2차 경고를 보낸 뒤 전혀 개전(改悛)의 정(情)이 보이지 않고 혁신노력보다는 도리어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는 무명(無明)의 행(行)에 대해 모든 것이 덧없다[無常]는 불변의 진리에 따라 성주괴공(成住壞空)의 과정을 거쳐 소멸의 결과를 맞게 되는 대가를 반드시 치르도록 한다.

 

“천하의 모든 것은 그 시작이 있게 마련인데 그것을 천하의 어머니라고 하겠다. 그 어머니를 터득하게 되면 그 아들을 알 수 있게 되고 그 아들을 알게 된 뒤에는 그 어머니를 지킬 수 있게 됨으로써 스스로 세상에서 사라지는 날 까지 위태로울 일이 없게 된다.” [天下有始 以爲天下母 旣得其母 以知其子 旣知其子 復守其母 歿身不殆-老子 道德經 제 52장]

 

BC 6세기경에 생존했던 노자의 이 가르침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 격인 자연, 그리고 그 자연 속으로 놓인 소통의 통로인 도(道)를 인식하고 그 도를 좇아 자연에 순응하여 살 경우 이 세상에서 생애를 마치고 사라지는 날까지 위태로울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힌다. 자연스러운 삶, 이치에 부합하는 순리적 삶을 통해 질병 없는 세상, 재액(災厄)을 만나지 않는 이상향 신천지에서 제게 주어진 수명을 온전하게 누리며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를 전해준다.

 

“자연으로 돌아가라.(Retour a la nature.)”는 명언으로 세상에 잘 알려진 프랑스의 사상가 장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1712~1778)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까닭으로 제도권 교육과는 처음부터 거리가 멀고 그 혜택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자랐으나 워낙 폭넓게 ‘산 공부’를 치열하게 함으로써 인구에 회자되는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교육의 목적은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만드는데 있다’고 전제한 뒤 “식물은 재배함으로써 자라고 인간은 교육을 함으로써 사람이 된다”는 말로 참 교육의 바른 길을 제시했고 건강문제에 있어서도 ‘의료 자연주의’를 역설해 인류를 위한 ‘참 의료의 큰 길’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일깨워준 바 있다.

 

역천의 삶 아닌 순천의 삶 살아야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고산준령들이 에워싸다시피 한 청정지역 한반도에 살면서 자연을 외면하거나 등진 채 ‘역천(逆天)의 삶’을 살게 아니라 천수(天壽)를 온전하게 누리기 위해서라도 노자 도덕경과 장자크 루소의 자연주의에 따른 ‘순천(順天)의 삶’을 살 필요가 있으리라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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