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찔한 운행 등하교 시외버스 / 캠퍼스 불청객 포교행위 활개 / 끊이지 않는 신학기 불법제본 / 막걸리 뿌리는 신입생 환영회
올 초 대학가의 풍경은 ‘지성의 전당’이라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유달리 시끄럽다. 논란의 첫 출발은 성추행에 가까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OT)에서의 게임문화였다. 특히 여러 대학에서 ‘25금 몸으로 말해요’라는 이름으로 유사 성행위를 묘사하는 게임이 진행됐다는 사실이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공개됐다.
전북의 대학가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달 29일 도내의 한 대학에서는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신입생들을 야외에 앉혀놓고 머리에 막걸리를 부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대학이 진상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언론에서 공개된 성추행과 막걸리 세례 이외에 대학생들의 일상 속에서도 일그러진 상아탑의 자화상은 드러난다. 입석 승객을 태우고 달리는 아찔한 통학버스, 여전히 성행하는 불법 제본, 잊을만 하면 출몰하는 캠퍼스 불청객 ‘도(道)를 아십니까’, ‘똥군기’라 불리는 선배들의 얼차려 등이 바로 그것 들이다. 천태만상이라 불릴 정도로 실로 각양각색의 풍경이 연출된다.
△입석과의 전쟁= 익산에서 전주의 한 대학교로 가는 시외버스. 매일 오전 등교 시간 순식간에 좌석이 다 차고 5~6명 이상의 학생들이 통로에 서자 버스는 그대로 출발한다.
버스는 국도를 타고 시속 90㎞이상의 속도를 내며 30~40분을 그대로 달린다. 버스 안에 서 있는 학생들은 버스가 갑자기 서거나 방향을 틀면 몸도 크게 흔들리는 아찔한 상황이 연출된다.
통학생 A씨는 “아침에 조금이라도 늦으면 버스가 꽉 차 입석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빨리 타기 위해 터미널에서 부터 난리”라면서 “입석으로 버스에 탔다가 달리던 버스가 급정거해 넘어진 경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1교시(오전 9시)에 시작하는 아침 등교 시간 버스에서 입석으로 30여분을 달려온 대학생들은 녹초가 된다.
학생들은 배차간격이 어정쩡하다보니 울며 겨자먹기로 위험한 입석 승차를 선택하기도 한다.
밤이 되면 또다시 입석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전주 덕진 간이터미널을 출발하는 버스는 대학가에서 만취한 학생들이 대거 몰려와 차 안에 술과 음식냄새가 진동한다.
운전기사 A씨는 “막차 운전을 할 때 술에 취한 대학생이 버스에 오르는 것을 막으려해도 막무가내로 타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며 “어떤 친구는 버스에서 구토를 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29일 밤 기자가 직접 전주 덕진 간이터미널을 찾아가 버스에 탑승하는 승객들을 취재한 결과, 특히 대학생들이 하교하는 특정 시간대에 승객이 많이 몰려 입석 승객이 눈에 띄었다.
현행 도로교통법 시행령 제23조는 고속버스의 승차인원은 승차정원보다 많은 인원을 태우고 도로를 달릴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시외버스의 입석 운행을 제재하는 규정은 별도로 없다.
고속버스의 입석 운행 적발시 범칙금 7만원과 벌점 10점이 부과되지만, 시외버스는 이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 점이 법망의 사각지대 속에 시외버스 입석이 활개치는 이유다.
그러나 오늘도 학생들로 꽉 찬 통학버스들은 통로에 몸을 실은 승객들을 태우고 아찔한 주행을 하고 있다.
△캠퍼스 불청객 “도(道)를 아십니까”= “저기요, 5분만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전주 소재 A대 박모 씨(25)는 “또 걸렸다”싶었다. 박씨는 최대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이미 다가오는 두 여성의 표적이 된 뒤였다. 이들은 수업에 늦었다는 박씨의 말에도 “별로 안 바빠 보이는 것 같다. 잠깐이면 된다”고 애원하며 박씨를 곤란하게 했다. 박씨가 무시하고 지나가자 “사람이 말하는데 너무 하는거 아니냐”며 되레 박씨에게 화를 냈다.
‘캠퍼스 불청객’들에게 대학생들이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주로 2인 1조로 짝을 지어 캠퍼스를 거닐다 벤치에 앉아 쉬는 학생들을 표적으로 삼아 무분별한 노상 포교행위를 하고 있다.
접근 수법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도를 아십니까”, “인상이 좋아요” 등의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학회 또는 연구소 등에서 왔다”며 간단한 설문지를 들고 접근하거나 새 학기를 맞아 동아리를 홍보하는 것처럼 속여 말을 붙이기도 한다.
학내 노상 전도를 당한 이모 씨(23)는 “창고 같은 곳으로 끌려가 제사를 지낸 후로 그들이 스토커처럼 달라붙어 강의실은 물론이고 집까지 따라온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제는 귀찮은 것을 넘어 두려움까지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학교 관계자들은 포교행위 제재가 사실상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 대학교의 관계자는 “무분별한 노상 포교행위로 학생들이 피로감과 불쾌감을 느끼는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며 “그러나 전도행위 자체가 불법이 아니고 캠퍼스는 열려있는 곳이기 때문에 이들의 포교활동을 일일이 단속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 불법제본 여전= “교수님들은 늘 그러시죠, 하루 술 안마시면 전공책 살 수 있다고. 뭘 모르셔도 한참 모르시는 거 같아요. 전공책 다 사면요, 20~30만원 우습게 넘어가요. 자취생 입장에선 생활비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셈이죠.”
도내 한 대학에 다니는 정모 씨(21)의 전언이다.
신학기를 맞은 도내 대학가의 한 인쇄소. 정씨와 같은 학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저작권법(제136조)에 저촉돼 벌금을 물 수도 있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불법의 유혹에 흔들린다. 한 권에 3만원에서 10만원 정도 하는 책값이 부담돼서다.
정씨는 “제본하면 권당 2~3만원씩 돈이 굳는다”고 말했다.
이런 불법 제본은 정부의 단속강화로 한동안 줄다가 다시 늘어가는 추세다. 한국저작권단체연합회 저작권보호센터에 따르면, 도내에서 지난 3년간 적발된 업소와 수거된 출판물은 각각 16곳 1100점(2013년), 18곳 796점(2014년), 24곳 832점(2015년)에 달한다.
한 대학 인근에서 인쇄소를 운영하는 강모 씨(45)는 불법 제본 단속이 실질적인 책 구매로 이어지지 않는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단속이 강화돼도 주머니 사정이 딱한 학생이 요구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들어줄 수밖에 없다”며 “게다가 최근에는 파일을 다운받아 인쇄를 해가는 경우도 부지기수”라고 설명했다.
교수들 입장에서도 불법 제본을 딱히 막을 방법은 없다.
대학교수 이모 씨(53)는 자신의 저서를 수업교재로 사용할 때 출판사와 학생들을 직접 연결한 다음 20% 정도 할인된 가격으로 사게 한다고 했다. 이 교수는 “저작권 침해문제를 단지 학생 개인과 인쇄소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는 문제”라며 “비싸게 샀지만 잘 사용하지 않는 전공책의 활용에 대해 대학 측의 제도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배가 시켰는데 안해?”…캠퍼스 군기 논란= 도내 한 사립대 동아리에서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얼차려’를 줘 군기를 잡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학가에 따르면 지난달 24일 한 대학교 페이스북 페이지 ‘드루와’에는 “이 대학 학생회관 5층에서 군기 잡는데 무슨 일인지 해명 좀 부탁한다고 올려주세요”라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이 올라왔다.
사진 속에는 3~4명의 남학생들이 서 있고 그 앞에 학생 여러 명이 ‘엎드려 뻗쳐’를 하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이 장면은 이 학교의 한 동아리에서 몇몇 후배들이 지각을 했다는 이유로 선배들이 이같은 얼차려를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학 관계자는 “음악·체육 등 단합이 중요한 동아리에는 어느 정도 군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런 행위를 하는 동아리와 단과대학 등 학생회를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김세희, 남승현, 김윤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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